제112집: 우리들 1981년 04월 1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24 Search Speeches

상대관계로 지어진 "조세계

우리들, 작게 보면 내 개체도 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체도 마음과 몸의 상대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우리 개체에 있어서 모든 사지도 우리들의 하나의 작용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눈을 봐도, 그 눈 자체가 보는 데는 반드시 초점 중심삼고 그 환경적 여건을 통한 입장에서 쌍을 이루고 보는 것입니다. 코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대해서 말하면 개인과 전체의 기준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평면적인 면에서도 그렇게 되지만, 종적인 면에 있어서도 주체와 대상 관계입니다. 그럼 우리들이란 것은, 우리들이라는 그 범위가, 그 환경적 관계가 무엇으로부터 완성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류역사를 볼 때, 역사는 어떠한 방향의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방향과 그 시대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시대 시대에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가 직선적인 방향에 있어서의 차이냐, 혹은 원형적인 방향에 있어서의 차이냐? 하나의 원형을 중심삼고 간다고 보면 동반구가 있고 서반구가 있는데, 그 어느 분야에 작용적 권을 갖고 있는 입장이냐 하는 것은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전체 역사의 방향이라는 것은 완전히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궤도를 따라가 가지고 목적에 도달한 다음에는 반드시 돌아와야 된다 이거예요. 인과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과의 자리에 갔다가는 원인의 자리로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오는 데는 어떻게 돌아 오느냐? 갔던 길의 그 방향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반대적 방향을 거쳐서 돌아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동쪽으로 돌아갔으면 서쪽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태양을 중심삼고 지구성을 예를 들어 말하면 한 쪽이 낮이 되면 한 쪽은 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역사의 방향성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사방성이 다른 입장에서 교차되는 환경적 배후를 남기면서 전진합니다. 혹은 환경적 기반 위에서 전진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그 처해 있는 개성 개성이 다르고 처해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겁니다. 동이면 동, 서면 서, 남이면 남, 북이면 북,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볼 때에, 거기에 동서간의 중간 위치, 또 거기에 북동간의 중간 위치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위치들이 작용하고 있지만 그 방향성은 크게 보면 대우주의 방향에 대해 상대적 방향성을 지니고 가야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