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집: 전진과 후퇴 1970년 11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5 Search Speeches

인간은 보다 나아지기를 "라" 존재

인간이 이러하므로 인간을 지으신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도 현시점보다 미래의 시점을 더 빛내고 싶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습을 보시면서도 오늘의 우리 모습보다 더욱더 빛나는 내일의 우리의 모습을 요구하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전진을 하고, 보다 나은 결과를 대하게 될 때는 기쁨을 느낄 것이지만 현재보다도 환경적인 여건이 낙후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슬픔을 느끼실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가 관계되어 있는 모든 내용과 사정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분석해 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도 우리 인간의 모습을 넘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은 우리 인간은 물론 하나님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보람있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오늘보다 나을 수 있는 내일, 지금보다 나을 수 있는 금후를 어떻게 형성하고 개척하여 보람있는 세계와 보람있는 인생길을 걸어가느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지 상태에서는 보람있는 나를 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거기에는 진전이나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은 자아를 발견할 수 있고, 진전해 나가는 자아의 가치를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보다 오늘이 못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못하다면 정지가 아니면 후퇴의 운명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현재의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더 낫다는 것은 반드시 현상태에 덧붙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못하다는 것은 현상태보다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낫다는 것은 흥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추가 좌우를 가름하고, 전후를 가름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로 기울어지느냐 좌로 기울어지느냐, 혹은 앞으로 기울어지느냐 뒤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바뀌는 운명길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길에서 자신이 우로 기울어지거나 앞으로 기울어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힘의 작용이 있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보다도 내일이 빛나기를 바란다면 가중된 그 무엇을 플러스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만이 진전이 성립되는 것이며 그래야 현재의 정지된 입장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행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전진을 한다는 것은 운동을 한다는 것이므로 그 자체내에 있어서 힘이 소모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어떠한 작용이 벌어지려면 반드시 거기에는 힘의 소모가 있게 되는데, 그때에 소모되는 힘을 자체내에 유지되어 있는 힘으로만 사용하여 다 소모한다면 정지된 환경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3의 힘을 끌어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제3의 힘으로 말미암아 정지된 현재 입장보다 나아진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의 노력은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목적을 추구하는 노력이 아니라 제3점의 목적 추구라는 시점에서부터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목적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민학교 1학년은 1학년에 머물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2학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요, 2학년은 3학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인생도 현재의 자기 가치를 보다 보람되고 가치있게 하기 위해서 현재의 자기 입장보다 차후의 보다 나은 자기 입장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추구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 환경에 선다면 전진하는 양상이 배가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