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우리의 사명과 책임 1971년 08월 13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149 Search Speeches

청평성지를 마련하" 과정- 있-던 일""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3년 전에 청평에 와 있을 때는 낚시터 하나 잡다가 창피를 당했습니다. '어디서 얻어 먹던 패들이 와 가지고 주인도 모르게 낚시터를 닦아 놓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얻어먹는 사람이 무슨 체면이 있어요? 하면서 다른 구실을 풍자적으로 빙자해 가지고 '임자하고 나하고 사돈이라구' 하면서 농담을 피해 벌써 그 주인이 누군지 다 알아 가지고, 당신 이름은 아무개 아니냐, 아들의 이름은 아무개 아느냐, 미리 다 알거든. 그래 들이 때리는 거라구요. 그 아들하고 나하고 사돈지간이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어? 이래 가지고 그들도 궁금증이 나거든, 장본인에게 사돈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니 와서 쑥덕쑥덕 하는 거라구요. 그래도 대해 주지 않으니 거북해서 슬금슬금 들어와 가지고 고기가 잘 잡히느냐고 묻기도 하고 그래요. 이런, 욕을 할 때는 언제고…. 그럴 때는 그렇게 슬렁슬렁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웃음) 그렇게 첫날 낚시할 때 얼마나 천대받았는지 모릅니다.

기회만 있으면 쳐라 이겁니다. 우리가 언제는 허가받아 가지고 뭘 했어요? (웃음) 사건을 저질러 놓고 욕을 먹든 뭘 먹든 어거지 떼거지를 써 가지고 자리잡아 나온 것이 통일교회인데. 그렇지 않아요? 체면보고 눈치 봐가지고 언제 합니까?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굴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다 거꾸로 일을 시작한 거예요. 여기 한 100평쯤 되는 땅을 사려는데 한 평에 4만 원, 5만 원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4만 원, 5만 원이 뭐냐고, 우리를 천대하면 벌받는다고 해 가지고 만 오천 원 줬나? 이렇게 해서 산 것입니다. 그때는 아주 형편이 무인지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천막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이 와서 수양하는 줄 알고 있거나,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소일하러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때 이 지방을 탐지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내가 뭐 낚시로 고기 잡으러 다녔겠어요? 소문 내지 않고 터를 잡아야 되겠기에, 3년 전부터 여기에 사람들을 파송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전부 배를 사 주고, 그물도 사 주니까 그들은 자기들 살림살이하기 좋다고 해서 거기에만 열중했지, 선생님 계획을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비상대책을 세웠던 것입니다. 여기에 터를 잡고 있는 모든 왕초들을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아무 골짜기나 블록(block)에 가면 대장이 다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전부 다 있습니다. 어떤 면이든 다 있어요. 그들은 색다른 사람이 오면 자기들의 기성 기반을 침입한다고 해서 텃세를 아주 많이 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자식들을 꼭대기에서 누르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보를 전부 다 수집해 가지고…, 별 수 있어요?

맨 처음 청평 버드나무집도 그래요. 그 사람이 평양내기인데 옛날엔 싸움꾼이었고 여기에서 왕초라구요. 그래서 이 사람을 휘딱 잡아 뉘어야 되겠다. 잡아 꺾어 놔야 되겠다…. 그래야 우리가 왕초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웃음) 이래 가지고 서너 명을 꺾어 놓았습니다. 또 가평군 일대의 우리 승공연합의 간부들이 진을 치는 것입니다. 그들의 패거리가 많거든요. 그들을 다 잡아채는 겁니다.

그 후로는 우리가 땅을 안 산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못 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돈을 가지고도 못 산다구요. 우리가 포기한다는 결재가 나야 그들이 땅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 사는 거라구요. 언제 따라다니면서 땅 사겠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 그 기간에 약 백만 평90만평 이상의 땅을 살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집이 몇 평 됩니까? 교회가 몇 평 돼요? 만 평쯤 됩니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