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집: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1972년 03월 0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스카티시 라이트템플 Page #232 Search Speeches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뜻을 다 못 이루고 가신 예수

그러면 세째번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니, 아담과 해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가운데에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안에 주체성과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와 대상으로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도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체적인 능력이 상대적인 능력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되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계승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그것을 위업으로 받은 것이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씨든지 두 조각이 한 꺼풀에 씌워져 있습니다. 콩 같은 것도 두 조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근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고는 근본의 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앞에 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과 한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과 같이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4천년 동안 섭리하신 것은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한 것은 예수를 죽이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믿으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믿지 말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틀림없이 믿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믿었더라면 오늘날 유대교는 이 땅 위에서 없어졌을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합한 새로운 종교형태를 갖추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유대교의 대표적인 제사장의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선민이 예수님을 중심존재로 보내주마 약속하신 메시아인 줄 알고 모셨더라면 예수님은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수백의 교파로 되어 구교니 신교니 하고 싸우는 종교, 퇴폐적인 종교 형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죽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예수님이 왕인데 혼자 사는 왕을 바랐겠어요? 혹은 제사장인데 혼자 사는 제사장을 바랐겠어요? 하나님도 틀림없이 신부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가정을 가지고 왕이 되었다면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한몸이 되고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아들딸이 되어 자녀를 가졌다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손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으라고 보냈어요, 죽으라고? 천륜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된 아들이 되었고, 한몸이 되어 아버지를 대신한 첫째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창조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못하고 죽어 갔기 때문에, 죽는 그 시간에 신랑이요 신부라는 말씀을 남기고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탄식한 곳이 많습니다.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이미 붙었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는 탄식은 그 불이 붙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 예루살렘을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으려 했지만 너희들이 품기지 않았다'고 탄식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최후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하게 된 곡절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구주가 가면, 구해 주는 사람이 가면 그 뒤를 구원받는 사람도 따라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 때문에 자기를 따라 나오려는 사람은 십자가의 죽음길을 걷지 않고는 올 수가 없기 때문에 후대의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할 내정을 알고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3차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다 잃어버리고, 기독교의 수많은 사람이 몸뚱이를 말할 수 없이 찢기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준비한 국가적인 기반, 혹은 종교적인 기반은, 땅에서 실천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 나 버리고 오늘날 기독교는 공중을 중심삼은 국가의 새로운 이념을 찾아 나서는 비참한 운명에 섰습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교회를 중심삼고 영육을 중심삼은 땅의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나라만 바라보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잃어버린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같은 기반을 새로 찾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사탄세계를 승리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