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집: 하나님과 나 1967년 04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1 Search Speeches

지(知)와 정(情)의 관계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어야 됩니다. 힘이 있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왜 필요하냐? 목적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중목적, 공동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가 이중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고 보면 이러한 데서 주고받는 것이 목적인데, 물건들을 보면 요것을 중심삼는 거예요. 전부 다 이렇게 벌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관과 전부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탈피하면 반드시 파괴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역사도 이런 면에서, 섭리도 이것을 위해서 섭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지향성은 무엇인가? 역사는 무엇을 중심삼고 가느냐? 목적을 중심삼고 가는데, 그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왜? 사랑은 원형을 그릴 수 있는 모든 핵심적인 위치, 이상적인 기준에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주로 해 가지고 전부 다 이념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존재물이 나왔다 하면 벌써 힘이 작용한 것입니다. 힘이 작용했다 하면 상대적 여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전에 힘, 힘이 있기 전에 상대적 여건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이성성상의 주체예요. 상대적 여건으로 수수작용을 해야 되고, 그렇게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창조목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에는 목적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이 말하는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다 틀리다는 것입니다. 대립물이 투쟁하여 통합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목적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 투쟁발전을 인정하는 데 변증법을 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이것을 사방으로 벌여 놓으면 여기에서 전부 다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원리를 이렇게 추구해 들어가서 쓴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도 그래요. 하나님 자체가 존재한다,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 힘이 생겨나려면? 「작용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고, 여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잡하지만 하나의 목적권 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은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권 내에 만우주는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주체라면, 진리가 먼저면 진리로 말미암아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런 원인적인 내용이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의 원인적인 문제는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지적인 문제, 진리는 중간에 있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방법 자체가 정을 유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게 근본문제입니다. 방법 자체가 어떻게 정을 유발하느냐 이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정의 (知情意) 에 의해서…. 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방법과 관계를 일으켜 가지고…. 방법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면 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지 정을 유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새로운 세계관에 있어서 해석이 다르게 되면 딴 세계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학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정이 먼저냐, 지가 먼저냐? 「먼저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볼 것 같으면 전지전능하신 겁니다. '전지전능하시다. 전지(全知)하다. 완전히 안다'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쁘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에서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으로 되어 있고, 개성진리체 속에도 주체와 대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진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원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적은 무엇이냐? 기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려면 기쁘기 위한 동기,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정의를 말하게 될 때 지가 먼저냐 정이 먼저냐 할 때, 본래는 정이 기준입니다. 그런데 방법적인 과정에 있어서 정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타락한 인간에게 재인식시키고 그것을 재현시키기 위해서는 지를 먼저 들고 나올 수 있으되 원칙적으로는 정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타락한 인간에게는 정적인 관계가 아직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는 성립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타락한 인간에게 재현시키기 위한 수단 방법으로 지를 먼저 들고 나왔지만, 본래는 지가 먼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이 먼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정의가 아닌 정지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지의가 되어 가지고 정으로 돌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의 목적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지가 원인이고 기쁨이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쁨이란 것은 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이 먼저 있어 가지고 지의 과정을 거쳐 기쁨의 세계를 연결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예」 이러한 문제를 가려 주지 않으면 앞으로 상당한 어려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지었느냐 할 때 정을 느끼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정을 느끼지 않으면 기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기뻐 가지고 정을 느껴요? 정을 느껴 가지고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이 동기가 되어 방법을 거쳐 가지고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을 느끼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정을 느끼지 않고는 기뻐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뻐 가지고 정이 느껴져요? 어때요? 기뻐 가지고 정이 느껴져요? 「정을 느끼기 위해서 모든 것을 지었으니까…」(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먼저 정이 가야 기쁨이 생기고, 모든 것에 대한 의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안다고 하더라도 정이 안 가면 의지가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정이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정을 통해서, 정의 이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품어 주고 연결시키려니…. 원리라는 것은 중간 과정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것을 재현시켜야 되는데 정을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귀납적으로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귀납적으로 분석해 가지고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 가지고 이렇게 되어서 정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