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천국은 나로부터(2) 1971년 07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8 Search Speeches

믿음만으로" 천국을 소유할 수 -어

개인이 원하는 최고의 소원, 혹은 최하의 어떤 바람이 있다 하더라도 역사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수난길, 흑은 수고로운 길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혹은 각자의 생활권 내에서 남보다 나은 생활의 터전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서 각자의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런 무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모든 존재들이 바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나, 보다 선하고 보다 높고 보다 가치 있는 나 자신을 계발하려 합니다. 또, 보다 넓고 보다 높은 것을 소망할 뿐만 아니라 그 소망을 오늘날 생활무대에서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바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외부에 나타나는 상대적인 세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이 좋은 바탕의 씨를 갖지 않고는, 혹은 좋은 바탕에 화합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것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슬픈 입장에 있을 때는 주위에 아무리 기쁜 사람이 있고, 기쁜 내용이 있다 할지라도 그 기쁜 사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기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기쁠 수 있는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내 스스로 생활권내에서 기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인하는 자리에서만이 우리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 가운데는 앞으로 올 천국을 바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믿고 나가면 천국이 내게 오리라고 믿고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생활과는 상관없이 믿는다는 그 조건만 가지고 천국이 나에게 인연이 되고 관계될 줄 알고 있지만…. 만일 내가 천국의 내정을 알지 못하고 생활감정이 통하지 않는 자리에서 단지 믿는 것만으로 천국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나의 생활권내에서 자극이 될 수 없고, 나 자체와 영원히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천국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고, 그 천국의 범위와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내 감정이라든가, 혹은 사정이 미칠 수 있고 통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면 거기에서 비로소 나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영계에 가서 우리들이 믿고 바라던 천국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믿음을 통할 수 있는 내용을 벗어 나서 그 천국이 나에게, 그 천국의 모든 행복의 여건이 나에게 파급될 수 없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믿는 것만으로는 그 실체를 감정으로 체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을 중심삼은 실체의 생활을 통하여서, 혹은 내 자체의 직접적인 체휼을 통하여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믿는다는 입장에서는 우리 타락한 인간과 타락하지 않는 하나님을 비교해 보게 될 때, 너무나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 거리는 수많은 역사시대를 거쳐온 거리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악과 선이 엇갈린 사정으로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런 인간 자체를 볼 때, 많은 수난의 길을 거치더라도 이 사정을 가려서 하나님의 본체와 접하기는 어려운 것이요, 인간 자체로서 그 거리를 단축시킬래야 단축시킬 수 없는, 일대일의 입장에서는 미칠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의 생명을 다하여 믿는 마음을 가지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기반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기준에 내가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은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의 새로운 출발의 동기, 기점, 출발점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 절대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하나님이 자기의 전체 내용을 좋아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그 자리가 감정적으로나, 혹은 사정적으로 완전히 통할 수 있는 자리냐 할 때 그렇지 못하고 시작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는 소원의 세계와 인연지어 갈 수 있는 출발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출발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면서 실천하는 생활과 생애 노정을 얼마나 남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긴 그 양이 천국의 내용을 인연지을 수 있는 내용이 되면 되었지 믿음 자체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믿는 것만을 가지고서는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하여서 출발의 인연은 마련할 수 있지만 그런 결정적 내용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믿기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믿고 나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실천을 해야 됩니다. 믿는 것만큼 실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실천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