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집: 우리들의 표준점 1972년 10월 0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8 Search Speeches

참을 제시할 수 있" 사람

이러한 환경에 우겨싸여 살고 있는 우리 개인으로부터 민족이라든가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서 과연 우리들이 바랄 수 있는 표준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과연 내 개인으로서 가야 할 표준이 어디 있느냐? 이것은 오늘의 시간권내에 살고 있는, 짧은 시간권내에 처해져 있는 내 자신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 그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어떤 색다른 표준, 보다 가치적인 내용의 표준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찾아 가지고, 발굴해 가지고 그 표준과 더불어 상대적 관계를 맺는 데에서부터 우리가 그야말로 좋을 수 있는, 가치를 바랄 수 있는 기준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나마 생각지 못하고, 이것이나마 찾지 못하는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오늘의 나를 세워 자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참다운 인간이 있다면 그 참다운 인간은 오늘날 역사를 대표해 가지고 '인류여 그대들이 가야 할 참다운 표준이 바로 이것이다' 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런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모진 희생을 당하더라도 그 길을 찾아 나설 때까지 외치고, 가르쳐 주고, 그 길을 개척해 줄 것이 아니냐, 만일에 그 길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참된 사람이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한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넘고 넘어서 적용되고, 전체를 넘고 넘어서 가치적인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참인 것입니다. 참은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찾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참된 길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 가치적인 인연이 어디에나 있게끔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하더라도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의 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생애의 책임이 아니겠느냐, 그 길이 어렵다고 해서 나 혼자만 알면 된다는 그런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세계 인류 가운데에 과연 그런 참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참을 중심삼고 얼마나 진지하게 살고 있느냐? 이게 문제예요. 얼마나 진지하고 보람있게 살고 있느냐? 또, 그 사람은 그것이 그 시대의 환경, 즉 어떠한 권위보다도 어떠한 권력보다도 그 시대의 인간들이 바라고 있는 어떠한 목적 완성한 그것보다도 더 가치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 환경을 밀고 나가고, 그 환경을 개혁하고, 그 환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모진 싸움을 당당하게 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이것은 진정한 참이다.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참이다. 이것만이 절대 승리를 결정하고 이것만이 절대 완성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고 확실히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외로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정화시켜 가지고 그 환경에서 제일의 표준의 인물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주체로서 상대적 환경을 개척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 환경을 개척해 내지 못하게 되면 그나마 역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자신에서 그쳐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제한된 권내에 있기 때문엔, 백년 미만의 생애노정이기 때문에 그 기간 내에 이 환경을 개척하지 못하게 될 때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애를 투입해 가지고 제2의 대상권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환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진짜 참으로 알 수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느냐? 다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걸 알면 다 같게요. 개인개인들로부터 '과연 저 사람이 참이다' 할 수 있는, 공인받을 수 있는 내용을 인간이 알 수 있느냐? 알 수 없습니다. 봐 가지고 모르는 것입니다. 봐야 같은 이목구 비를 갖고 있고, 같은 몸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그 내용의 가치를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주장하더라도 그 당석(當席)에서 그를 주체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