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집: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1973년 10월 21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리스너 강당 Page #95 Search Speeches

하늘길은 세상을 완전히 끊고 가야 하" 길

아브라함, 여러분이 잘 아는 아브라함에 대해 한번 알아 봅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우상 장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 장수 아들을 불러낸 거라구요. 하나님은 '야 아브라함아 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데는 무슨 약속이 있어 가지고 '너에게 이렇게 해주마, 이렇게 해주마' 하는 어떤 보장을 세워 놓고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저 무턱대고 떠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빼내려고 하는데, 만일에 아브라함의 동역자가 있어 가지고 따라올까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아니었겠느냐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데 일반 사람도 들을 수 있어요? 아브라함만 듣는 거라구요, 아브라함만. 또, 자기 부모한테 '어머니 아버지, 하나님이 나한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데 그러겠소'라고 하게 되면 미친 자식이라고, 미친 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말도 못했을 거라구요.

떠나는 데 있어서도 몇십 리 몇백 리가 아닙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라구요. 아브라함은 국경을 넘어 애급까지 왔다갔다했다구요. 아브라함은 자기 부모보다도, 자기 고향보다도, 자기 친척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환경을 헤치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명령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명령을 생명보다 더 중요시했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야간 도망을 했을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아브라함은 집시와 같은 행각의 노정, 정처없이 흘러가는 생활을 계속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단연히 끊고 나선 사람입니다. 완전부정을 기초로 하고 출발한 사람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형 에서보다도 사랑하겠다, 내가 선조로부터 축복을 받으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겠다'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나이였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형님의 장자기업을 팥죽으로 간교하게 빼앗았다구요. 그런 야곱이라구요. 그러나 야곱은 그런 일을 하면 형님한데 쫓겨나고 벼락이 날 줄 이미 알고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나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보시기에는 축복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에서보다도 야곱이 쓸 만하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청춘시절을 다 보내는 하란 땅에서의 21년 고용살이 생활을 하면서도 그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 줄 것을 틀림없이 믿었다는 거예요. 그의 외삼촌 라반이 그를 얼마나 속였어요? 열 번씩이나 속여도 아무 불평 한마디 없이 꿋꿋하게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할 거라고 믿고 나간 것을 보면 참 훌륭하다는 거라구요.

그리하여 축복을 받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또 천사를 맞아 들이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한번 쳐라! 때려 치워라! 명령하는 거예요. 그럴 때 야곱이 얼마나 지독했어요. '천사든 무엇이든 21년 동안 썩어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데 나를 어떻게 할 테냐! 죽더라도 양보 안한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내 팔이 빠지더라도 내 허리가 끊어지더라도 안 놓는다 이 녀석아' 하면서 붙들고 밤새도록 싸웠을 것입니다. 환도뼈를 부러뜨려도 '부러뜨리겠으면 부러뜨려라' 하며 더 달라붙었던 겁니다. 천사가 아무리 봐야 죽더라도 놓을 것 같지 않다는 거예요. 틀림없이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해결 짓고 가야 할 시간은 가까와오니 할수없이 천사는 친 입장에서 축복을 안 해줄 수 없는 거라구요. 이렇게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는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에서 왕자의 권위를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와 선민을 염려하는 마음,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마음이 우러난 그때부터, 자기 민족을 위해 나설 때부터는 어려운 모든 환경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호화찬란한 모든 권위를 일시에 버릴 수 있었던 용감한 사나이였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몰려 미디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낙심과 절망 없이 하나님께서 같이해 줄 것을 믿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호화찬란한 영광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목자 생활이요, 형편없는 봉사 생활이라고 할지라도 도리어 가치 있게 산 것이 모세의 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 세례 요한을 봅시다. 성경에 보면 세례 요한이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혁대를 하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니까 좋은 줄 알았지요? 과연 좋았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주님이 온다고 준비하고 30년 동안 광야에 나가 혼자 그 놀음하는 것을 보고 그 세례 요한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 우리 아들 세례 요한은 위대한 선지자다'라고 칭찬했겠어요? 만일 여러분의 아들이 세례 요한과 같이 30평생을 그런 놀음을 한다면 '아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 아들은 훌륭한 선지자다'고 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 나라에 가 보면 알겠지만 거기에 메뚜기와 석청이 많은 것이 아니예요. 많을 성싶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니 먹을 것이 없으면 필시 빌어먹어야지 별수 있어요? 먹을 것이 없으면 빌어먹는 거라구요.

자,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하고, 뭐 정강이에 스타킹이나 신었겠어요? 맨발로 다녔을 거예요. 맨발로 다니니 동네방네 꼬마들이 따라다니면서 '세례 요한 저거 저거….' 하며 얼마나 조롱했겠습니까?

오늘 저녁 미스터 문이 그런 차림, 가죽 옷을 입고 혁대를 띠고 정강이를 내놓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웃음)

자, 그러면 예수를 한번 알아 봅시다. 여기에는 예수를 잘 믿는 목사님들, 혹은 기독교의 열렬한 신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도 예수를 잘 믿는 열렬한 신자라구요. 그렇지만 우리가 사실을 사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