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집: 가정 1969년 05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6 Search Speeches

세계를 수습해야 할 우리"

지금껏 우리들이 역사의 한을 토로하고 역사상의 모든 조상들의 잘못을 원망해 왔습니다. 그런 우리 자신들이라면 오늘 이 시대의 역사적 과업을 책임지고 쟁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 스스로가 천명에 의해 가야 할 행동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생사도 개의치 않고 죽음길을 가시던 주님을 위해 오른편 강도의 입장에 서서 변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누가 반대하고 그 누가 원망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 봄날에 녹아지는 눈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다짐할 수 있고, 내 몸이 생명의 씨가 되어 다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참되신 분이라는 것,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라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행복의 기원을 마련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오른편 강도가 천국문을 밀치고 나오게 할 수 있고, 이 흑암권세를 헤치고 예수님과 더불어 당당히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승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의 공산당 앞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번에 일본에 갔을 때 느낀 것은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식구와 원리연구회 회원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인원으로는 공산당에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이미 미련한 대중에게 침투하여 자기들의 계획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들어왔는데 그런 공산당을 대항해서 그런 소수의 무리에게 하나님을 붙안고 생명의 폭탄으로 저들을 막아내라 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가야 됩니다. 죽음길을 오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가야 하고 쓰러지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쓰러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쓰러져도 망하지 않는 부활의 권한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러져 죽어도 부활의 은사와 부활의 권위와 부활의 환희를 체험할 수있으니, 타락한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일대의 소망의 기점이요, 일대의 희망의 기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번 세계순회 중에 일본에 들렀을 때 일본 식구들에게 `가라, 너희들이 원수의 도가니에 드러누워 죽게 되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예수님을 위로해 주고 갈 수 있었던 오른편 강도와 같은 절개를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수습할 수 없는 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우리가 가야 할 행로라는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각자의 가슴에 손을 얹으면, 누구든지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다짐해야 합니다. 심장의 고동이 그치는 날 나는 어디에 쓰러질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죽음이될 것이냐, 슬퍼하시는 죽음이 될 것이냐, 이 민족의 원한과 더불어 사라지는 인간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런 다짐이 한번 두번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민족에게 비운이 닥칠 적마다, 민족의 절망어린 한을 느낄 적마다, 골수 깊이 사무친 심정으로 천번 만번 다짐할 수 있는 그런 사나이와 아낙네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년 사연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는데, 내 자신의 일년 사연이나 십년 사연이나 일생 사연에 이끌려 나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엄숙한 천명을 받은 한모습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의 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귀하고 오늘의 내가 져야 할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삼천리 반도를 붙들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북을 기필코 다시 찾아 팔도강산을 통일해야 할 민족의 과업이 오늘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