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집: 구국운동과 제사장의 책임 1992년 11월 10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38 Search Speeches

언제나 하늘을 모시고 살아야

여기에 뭘 하러 왔어요? 국가가 중차대한 전환의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결심이 오늘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우리의 행동 여하에 집안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제사장은 친히 제물을 잡아야 됩니다. 피를 보아야 되는 거예요. 제사를 지낼 그 제물을 다른 사람이 잡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직접 피를 보아야 됩니다. 제물은 피를 보는 데 있어서도 지극히 깨끗하고,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를 볼 때는 누구의 피를 보아야 되느냐?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보아야만 그것이 대속(代贖)의 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거라구요. 함부로 잡았다가는 자기 일족이 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헌제를 드릴 때 제물을 쪼개야 했던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자기 아들을 세웠을 때도 그 제물을 쪼개야 되었던 것입니다. 쪼개지 않으면 아들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제물이 못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책임자는 누구든지 식구가 자기 사정을 얘기할 때 잘 듣고, 전체의 본이 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얘기를 할 때는 그 자료를 잘 기록했다가 전체의 교재로 쓸 줄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 감동을 받으면 일요일날 설교 제목으로 정해 가지고 정성을 들여서 식구들에게 그 감동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언제나 하늘을 모시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모시지 않고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설교도 할 수 없다구요. 설교를 책 보고 참조해 가지고 하면 하늘이 역사를 안 해요.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생명의 씨는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인간으로부터가 아니고 지식으로부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하기 전에는 반드시 눈물을 흘리고 나가야 돼요. 눈물을 흘려야만 회개시켜야 할 주인이 되고, 부모가 되는 입장에서 그 자식들의 모든 것을 회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눈물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눈물의 문은 눈물로 열어야 됩니다. 눈물의 문을 열어야 비로소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통회(痛悔)의 눈물을 흘려야 통회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빚진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공인(公人)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기가 책임을 못 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한다구요. 주변을 보고 `이런 면은 내가 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 식구가 해 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거 그렇게 한다구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전체가 당하고 있는 것을 선생님이 당해 나왔지만 이제는 개인과 종족, 민족을 넘어서 세계적인 모든 사건들은 전부 다 식구들 앞에 일면씩 다가올 것입니다. 선생님도 물론 당했지만, 전세계 식구들이 당하면서 전부 다 고개를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는 공동운명에 있다는 거예요. 공적인 면에서 영계가 직접 지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키득거리면서 들으면 안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일이 있으면 말하는 것보다, 웃는 것보다 먼저 하늘을 생각해야 합니다. 슬픔이 있어도 하늘을 먼저 생각하라구요. 내가 슬픔을 당해도 `내가 하늘 대신 당한다. '고 할 때 슬픔을 의연히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슬픔을 당하고 나면 반드시 대가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탕감하는 과정 중에 참 선한 입장에서 슬픈 눈물을 흘리면 반드시 선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슬픔을 열만큼 당하면 기쁨이 천만큼 온다는 거예요. 그런 생활을 느끼기 때문에 신앙 생활을 계속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못 느끼면…. 열만한 슬픔을 넘었어도 하나만한 기쁨밖에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런 기쁨은 며칠 만에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늘을 따라나가는 길은 진정한 슬픔을 당하면 진정한 기쁨이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으로 다가오는 거라구요. 내가 못 받고 내가 못 느끼면 자기 아내라든가, 자기 자녀라든가, 자기 조상에게 그런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래서 모든 일을 경솔히 할 수 없는 거예요.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의논하는 자세로써 생활해야 하는 거라구요. 답답하면 앉아 가지고 기도해요. 자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일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