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뜻 앞에 설 수 있는 최후의 승리자 1965년 01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3 Search Speeches

최후의 승리자가 되려면

뜻 앞에 있어서의 최후의 승리자가 되려면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을 불러 놓고 그 앞에서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데는 내가 선봉자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가 됩니다. 역사가 떨어져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심정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상에서 무엇 때문에 제일 슬퍼하셨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시시하게 하루에 눈물진 그런 것 말고, 역사적으로 개인을 찾아 세울 때 무엇 때문에 슬퍼하셨는 지, 가정을 찾아 세울 때 무엇 때문에 슬퍼하셨는지, 혹은 종족, 민족, 국가를 찾아 세울 때 무엇 때문에 슬퍼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이 끝날에 이 세계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슬퍼하시는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지 알게 뭡니까? 문제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역사 앞에 돌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사탄세계이니 전부 반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잘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자기는 안 먹고 희생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그냥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 주어라!' '네가 먹고 싶으면 남을 먹여 주어라'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남을 희생시키려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내 자신보다 가정을 위해 희생해야 하며, 가정보다 종족을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 가정이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면 그 가정이 친척 전체 앞에 봉사해야 됩니다. 친척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지요. 싸움을 하고 법석을 피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전체 앞에 봉사한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때가 되면 봉사한 사람이 높은 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영광은 그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반대로 망하는 자리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마음에 역사적인 모든 한을 품고 종횡의 중심에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리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가 역사적인 희생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 앞에 공헌을 못 합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길에 다리를 못 놓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라도 재림하실 수 있는 다리를 못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에게까지 맞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놓았다 하더라도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고난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발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의 개인이 핍박하고, 가정이 핍박하고, 종족이 핍박하고, 민족 전체가 핍박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고난, 가정적인 고난, 종족적인 고난, 민족적인 고난을 받게 되는 거예요. 기독교는 그런 고난 속에서 세계적인 발판을 넓혀 나온 것입니다.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종족적인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하고 가정적인 십자가와 개인적인 십자가까지 져야 합니다. 큰 뜻을 품으면 품을수록, 때가 가까이 오면 가까이 올수록 기독교의 시련과 핍박은 더욱 가중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끝까지 참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교단적인 입장에서 그런 책임을 할 수 있는 주의가 나와야 되는데, 그 주의를 가진 사람은 욕을 먹고 밟히고 몰리고 별의별 일들을 다 당해야 됩니다. 그 주의는 민주주의도 싫어하고 공산주의도 싫어해야 합니다. 기성 민주주의와 기성 공산주의가 모두 싫어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주의가 하나님주의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전도해 달라고 합니까? 들으려면 듣고 말려면 말라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