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집: 통일과 우리의 사명 1994년 02월 01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3 Search Speeches

종교의 사명

그래, 종교의 사명이 무엇이냐? 종교를 통해서 양심 세계에 절대 권한을 주어 가지고 몸뚱이를 굴복시키기 위한, 점령하기 위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이 뿌리가 뽑히지 않기 때문에 뿌리를 뽑아 없애기 위해서 구세주, 메시아가 오는 것입니다. 이래야 이론이 다 맞는 것입니다. 양심은 무엇이라고요?「제2의 하나님입니다.」제2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타락의 각성, 몸뚱이의 이런 반발적인 것이 생긴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의 근원이 역사를 망쳤고, 세계사에 수많은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기원적인 놀음을 한 것이 몸의 기원이었다는 것입니다. 몸이 이것의 기원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경계선 가운데서 양심적으로 가는 날에는 지옥을 면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려니 얼마나 싸워야 돼요? 투쟁해야 되는 것입니다. 격전을 해야 된다구요. 또, 몸뚱이가 양심을 중심삼고 격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대다수가 양심이 이긴 것인 아니라 몸뚱이가 이겼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은 왜 그런 거예요? 사랑을 통해서 타락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악한 사랑이지만 장성기 완성급에서는 그 사랑의 힘이 양심적 힘보다도 강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라구요. 사탄적 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힘이 그 기준에 서 있는 양심적 힘보다도 강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몸이 사탄적 사랑을 갖지 않고 창조한 완성적 기준에서 사랑을 했더라면 하나님과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염려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일생 동안 몸에 대한 염려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배에서 사는 쥐새끼들도 그 배가 항해 도중에 파손될 것 같으면 밧줄을 통해 가지고 전부 다 도망간다는 말을 들었지요? 개미 새끼도 홍수가 난다면 다 알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전부 다 막혀 버린 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 때문에 모르고 사는 거예요. 모르니까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알더라도 이것을 각성해 가지고 몸이 작용하는 이상 결의를 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타락의 재각성을 해야 된다구요. 어느 정도까지 해야 되느냐? 아담 해와 이상 분통하게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이들이 쫓겨날 때 얼마나 한을 품고 비통한 눈물과 더불어 추방당했겠느냐 이거예요. 타락으로 인한 그 뿌리 이상 한의 한의 비통함, 통곡이 벌어지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부 다 회심(回心)을 가지고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만나는 환희의 마음을 가지고 대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 탕감원칙으로 본 결론입니다. 당당하고 정당한 결론입니다. 눈물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거예요. 그 종교의 길이 막힌 것을 개인적으로 이런 싸움을 해야 되고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올라가는 데 쉬지 않고 사탄이 공격하니만큼 그 공격의 도상에서 핍박을 받는 자는 혼자입니다. 하늘이 핍박받지 않는 자를 협조하지 못 한다구요. 결심해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상 결심해야 하나님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이 도와주는 거예요. 아담 해와가 절대적인 신앙을 못 가졌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니 반대의 자리에서 그 이상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봉하고 마음이 원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 아니예요?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을 절대 밟아 치울 수 있어서 자기 일신에서 재연 현상을 이루어 가지고 청산 짓기 전에는 먹칠된 그것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지울 길이 있겠어요? 타락의 재각성을 통해 비통사를 다 취소해야 됩니다. 그 흔적을 다 취소해 가지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서 하나될 수 있는, 하늘이 같이 해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권까지 용서해 가지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가르치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부정하는 거예요. 몸뚱이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역설적인 논리가 왜 나온 거예요? 타락 때문에 생긴 거예요. 타락이 없이 그런 논리를 세웠다면 그 하나님은 사기꾼입니다. 인간을 그런 고통 가운데, 도탄 중에 몰아넣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인 기준이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