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집: 충심봉신의 생애 1989년 11월 07일, 한국 파주원전 Page #133 Search Speeches

인류의 참부모를 복귀하" 것이 구원섭리의 핵심

기독교를 믿고 복받겠다 하는데, 아직까지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고, 복을 줄 수도 없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것이 부모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재창조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해 나오신 구원섭리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나라 사람들의 메시아관은 어떠했느냐? 유대교는 4천 년 동안 '주님이 오시게 되면 우리 유대민족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고 다 가르쳐 나왔기 때문에, 로마의 압제하에 있는 유대민족으로서는 주님이 옴으로 말미암아 그 압제에서 해방받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구요. 그게 틀렸다는 거예요.

유대 나라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절대로 사랑할 수 있는 남성 완성자하고 여성 완성자가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가정을 이루어야 돼요.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 없이 종족이 있을 수 없고, 종족 없이 민족이 있을 수 없고, 민족 없이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그 핵이 뭐냐? 주님을 맞는 것, 메시아를 맞는 것입니다. 그분이 재림주지요? 구세주입니다. 구세주가 뭐냐 하면 완성한 아담이예요. 그 아담은 해와를 재창조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신랑으로 와서 신부를 맞지 못한 예수님은 '내가 신부를 맞기 위해서 다시 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남자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니예요. 여자를 두고 한 말이예요. 그게 어떤 여자냐 이거예요.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여자로서, 모든 죄악의 근원과 상관이 없이 오시는 주님을 만나서 절대 복종해야 돼요. 절대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주님을 만나 가지고 '아이구! 나 사랑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핍박받았소' 하면서 자기의 역사를 들어 가지고 알아 달라고 하는 조건이 성립 안 돼요. 그것을 조건으로 내세우면 아담 앞에 타락하지 않은 완성된 해와의 자리에 못 서요. 절대 복종해야 돼요. 이래서 종교는 맹목적 신앙을 강화했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이것이 어느 한 때에 풀려야 된다 이거예요. 어느 한 때에 풀려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역사시대의 여자들은 사탄세계의 남편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고 했다 이거예요. 사탄세계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은 참다운 재창조의 이상으로만 찾아가는, 사랑을 중심삼은 완성된 가정 형성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것과 끊어야 돼요.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어요. 그 죽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사랑을 완전히 죽여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사랑에서 살아나는 거예요. 그 말은 사랑을 두고 한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주님이 올 때는 애기 밴 여인들에게 화가 있어요. 왜? 애기를 뱄으니 절대 복종할 수 없고, 찾아갈 수 없어요. 그렇잖아요? 남편이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남편의 말도 들어야 되고, 아들딸의 말도 들어야 되고, 시아버지의 말도 들어야 되고, 가정에 매였으니…. 그래 가지고는 본연의 기준에 절대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한 내용이 역사의 배후에 엮어져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몰랐다는 거예요. 비로소 역사시대에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나와서 이 모든 것을 밝힘으로 말미암아 하늘땅에 막혔던 빙산이 녹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빙산이 녹기 시작해요. 무엇 때문에 녹느냐 이거예요.

이 빙산이 무엇 때문에 생겼느냐? 사탄의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거예요. 사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빙산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키지 않고는 녹일 길이 없어요. 이런 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신랑 신부라는 말이 있게 된 거예요. 예수님이 신랑 신부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하늘나라에 갈 때에 요한복음20장에 보게 되면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렇게 되어 있어요. 형제라는 거예요. 또 14장에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어요. 그것은 어떻게? 몸뚱이가 어떻게 그렇게 돼요? 사랑을 중심삼은 가운데 가능하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있고, 성인들이 내 마음에 있다는 거예요. 그 마음에 있기를 바랄 수 있는 그 주인들이 무슨 길을 찾아와서 무슨 자리에 있고 싶으냐 할 때, 사랑의 길을 찾아서 사랑의 정착점에 있고 싶은 것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