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귀한 것과 좋은 것 1962년 12월 15일, 한국 전주교회 Page #219 Search Speeches

효자·충신·-녀가 되어 하나님을 모"야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느냐?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사정이 많았겠느냐? 그렇다면 오늘날 인간이 제아무리 고생하고, 신문을 보게 되면 3면 기사에 특필되는 집단자살사건이 나오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고통에 비하겠느냐? `이놈아! 하나님이 이런 고생 가운데서 인간을 구하기 위한 책임을 지고 나왔는데 하늘 앞에 자살이 웬말이냐? '나는 그렇게 보는 거예요.

인간이 제아무리 고생하고 제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6천년 지난 세월을 통하여 나오신 하나님, 자식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찾아 세우시는 하나님 이상 불쌍한 자가 어디 있었겠느냐? 그거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아버지는 불쌍한 아버지예요! 자식 된 인간을 찾아와 가지고 설명을 해줄 수 없으니 불쌍하지요. 그러니 갖은 수단을 아끼지 않고 이걸 끌어 나와 오늘날 하늘을 공경할 수 있는 , 하늘을 사랑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고, 민주진영을 중심삼고 이렇게 만들어 놓기까지는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오늘날 종교인들, 기독교인들을 보게 되면 처량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제 배워야 할 것은 행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배우자는 게 아니예요. 그것은 그래도 좋고 안 그래도 좋아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효자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는 거예요. 효를 세울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에서 생기는 거예요. 충을 세울 수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완전히 편안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국태민안한 그런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나라의 형편이 최후의 고비에 부딪쳐서`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전체가 죽느냐, 사느냐? ' 하는 최후의 역경에서 있어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국운을 돌려 국난을 풀어 주는 책임과 내용을 세운 자라야만 그 나라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려울 때 충의 명사, 어려울 때 효의 명사, 어려울때 열녀라는 명사가 역사노정에 기록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세계사에 어떤 페이지를 들여다 볼 때, 어느 누가 더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 나갔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비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만고(萬苦), 일만 가지의 고통을 책임진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제일 불쌍하고 제일 원통하고 제일 서럽고 제일 불행한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이 하나님이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여러분이 스스로 뼈와 살에 사무치게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예요, 내 아버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하나님도 고대했지만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오느냐? 오늘날 이 한반도 한 민족에게 기독교 사상이 들어올 때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죽인 줄 알아요? 자기 종을 끝없는 바다에, 끝없는 물 구덩이에 쓸어 넣어 그것을 메우는 놀음과 마찬가지예요. 엄청나고 한없는 놀음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온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고생하신 대왕님이예요. 세상에서 눈물을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눈물을 흘린 자가 없고, 땀을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땀을 흘린자가 없고, 피를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피흘린 자가 없다는 거예요. 슬픔이라는 명사는 인간의 슬픔을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 한없는 고통을 가진 하나님의 슬픔을 나타내는 명사입니다. 이 슬픔이 하늘을 위주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땅 위에 사는 수많은 인류는 불행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어요.

행복해요? 여러분들은 행복해요? 돈이 많다고, 권세가 있다고 행복해요? 불행입니다.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맞아요. 그러면 어느 날에야 이 고생길이 끝나게 되느냐? 안식의 한날이 이 땅 위에, 지구성으로 찾아올 것이냐? 하나님이 쉴 수 있는 날, 하나님이 찾고 있던 아들딸을 찾아 평화의 가정을 건설하는 날, 그날서부터 하늘왕궁에서는 행복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니 대우주가 기뻐하고, 만민 만물은 전부 그것으로부터 봄날을 맞이하여 태평의 양심세계에서 비로소 발을 펴고 안식의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우리가 바라던 이상세계요, 기독교에서 말하던 천년왕국의 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