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집: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1972년 03월 20일, 영국 후렌즈미팅하우스 Page #23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사'을 받으려면

그러면 양심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을 거기에 모셔 놓고 '아이고, 내가 터져 죽겠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관계는 '네가 나를 마음으로 사랑하느냐? 즉, 마음속에 있게끔 사랑하느냐, 없게끔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은 가장 귀하기 때문에 그 귀한 사랑도 마음속에 집어 넣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자동적으로 마음속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 불변의 사랑, 길이길이할 수 있는 사랑이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명사 중에서 최고의 명사로서, 문학에서 소재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온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온 사랑은 내 것이나 네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중심체를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다음엔 내 것이기 전에 상대의 것입니다. 그 다음 그와 내가 하나되어야 사랑이 내 것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고귀한 사랑, 영원한 사랑, 불변하는 무한한 가치의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됐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당당하게 나서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겸손하게 받들고 위하는 자리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원칙이 거꾸로 되어 있다구요. 미국 사회에 있어서 가정을 보거나 부자간의 사랑관계를 보면 전부 다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되고 헝클어졌지만, 부모의 사랑,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만은 본질에 가까운 사랑이라 영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아들딸에게 '나는 대통령이니 나를 알아 주라. 나는 대통령이니 네가 나를 사랑해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는 부모가 있어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데는 굶어도 좋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러한 등등의 문제가 우리의 생활에 엇갈린 결과로서 반영되는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