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를 우리는 넘자 1958년 0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0 Search Speeches

끝날의 성도의 책임

그런데 자기의 가정과 종족, 교단과 민족을 품으시고 싶은 심정을 지니신 예수님이었지만 예수님은 민족으로부터 핍박당했고, 교단으로부터 조롱당했으며, 종족으로부터 몰림을 당했고, 끝내는 열 두 제자로부터 배반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면 대성통곡해야 할 슬픈 일이요, 인간들에게 저주를 돌릴 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원수들에 대한 적개심을 극복하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의 가는 길이 막힌 것을 아신 예수님은 어느 누가 역사적인 비운의 심정을 인계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내적 심정을 위로해드릴 것인가를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따르고 있던 수많은 무리들은 이스라엘의 복을 인계해줄 줄 알았고 유대교단의 축복을 성취시켜줄 줄 알았으며, 자기들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천국을 만들어줄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더라 이겁니다.

선조들이 걸어온 공식적인 길을 거쳐가야 할 입장에 선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해야 할 사명이 크면 클수록, 혹은 이념이 높으면 높을수록, 책임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당시에는 그 민족이 당신을 반역하지만 앞으로 자신의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세계적인 원수들이 굴복해 들어올 것을 아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민족적인 원수의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밟고 올라가 세계적인 원수를 굴복시킬 것을 생각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요셉가정에서의 30년 사생애라든가 3년공생애에 관한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은 역사적인 비운을 대신한 분이요 천적인 비운을 대신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가 5병 2어의 기적을 보여줄 때에는 자신의 메시아요 민족을 구해주는 구세주로 믿었는데, 정작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는 다 버리고 돌아가버렸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가 하늘을 대한 예수님의 내적인 심정, 즉 하나님에 대해 사무친 심정을 지니신 분이요 전체의 섭리역사를 책임지고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의 사정을 깨달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또 먼저 따르던 무리들을 따라 민족 전체가 예수님의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4000년 복귀역사를 영광의 한 페이지로 장식했어야 할 예수님의 복음의 역사는 피의 제단을 통한 눈물의 역사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날까지 계속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아시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염려해서 드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염려하고 후대의 수많은 인류를 염려해서 드린 기도였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가진 것이 없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아는 것이 없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낙망할 일이 있다면 역사과정을 거쳐 싸워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 입니다. 또 선지 선열들이 피의 제단을 쌓아오면서 수고한 그 심정을 느끼지 못한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참 친구가 되는 것을 시기하며 유혹하던 사탄 대해 비장한 각오와 사무치는 적개심을 갖지 못한 것을 안타까와 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나온 역사과정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서야 가정적인, 혹은 민족적인 비운의 고개를 넘어갔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비운의 장벽을 넘어야 할 우리들은 노아가정의 실수를 잊어버리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세례요한의 실수를 반복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인간 타락 이후 6000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의 전체적인 슬픈 심정을 느낀 사람이 없다 할진대, 여러분은 `아버지여! 나를 세워 노아와 아브라함과 야곱과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전체적인 아버지의 심정, 즉 타락하기 전 아담을 사랑하셨던 심정, 또 타락 이후 인간들을 대하시며 나타내지 못하셨던 사무친 원한의 심정까지 내 마음으로 느껴 `역사적이고도 우주적인 제물이 되겠나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이후 지금까지 채찍을 들 수 없는 서글픈 자리에 계셨던 것을 누가 알아드렸든가?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지 공분 공의의 하나님이란 것을 인간들은 몰랐었습니다. 과정에서는 사랑으로 대해 주시지만 최후에는 심판하고 때려야 할 입장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분의 심정도 갖고 계신 공의의 하나님이란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가나안 7족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복지를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끝날의 성도로 불림받은 여러분, 남다르게 뜻을 따라나선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명제를 걸어놓고 여러분을 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하는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날에 처하여 있는 우리는 역사적인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동시에 그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원한을 품고계신 아버지를 해원해 드리기 위해 싸워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참아들의 입장에서 이런 사명을 완결짓기 위해 오시는 분이 왈 재림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