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하늘편의 내적 슬픔 1970년 03월 29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67 Search Speeches

세계를 복귀할 수 있" 방안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 할 세계는 우리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복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면에서 기성교회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남한이 아벨 입장이 되어서 가인 입장인 북한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이 가인을 굴복시켜 하나의 완전한 국가가 되는 날에는 세계적인 아벨 국가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국가가 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우리의 판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국가 기준을 세웠다면 세계의 판도가 예수님 앞에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북 5도를 굴복시켜 승리의 국가 기준을 세운다면 세계의 판도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북 5도를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남한에 있는 가인적인 종교인 기독교와 아벨적인 종교인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위하고 이 민족을 위하여 나섭시다. 희생합시다. 이것이 말로써 안 되면 힘으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사상을 무장해 가지고 삼팔선을 철폐하자고 해야 합니다. 그런 여건과 환경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남북한 총선거가 실시되면 남북한을 하나님 뜻 앞에 세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공산국가를 삼켜 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세계통일은 가능하다' 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을 형성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그런 터전을 슬픔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 6천년이 걸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세계로 보내기 위한 공식적인 과정을 거치시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슬픔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남한 백성들을 생각할 때,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있고 문 아무개가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서러움 앞에 내 서러움을 일치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서러움이 여러분 자체의 서러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서러움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아버지의 서러움에 여러분의 서러움을 일치화시킬 수 있는 곳에서만이 세계적인 해원성사를 할 수 있고, 전체적 탕감을 조성할 수 있는 기반이 닦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그야말로 용사 중의 용사, 정예부대 중의 정예부대가 되어 천주사적인 사명을 감당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쁨으로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내적 슬픔을 지니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만약 이들이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들의 후손은 어떻게 될 것이며, 제 2의 작전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복구할 수 있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봤어요?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이 전부다 거꾸러지게 되는 날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극한 슬픔이 우리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생활 투쟁권내에서 이것이 뒤넘이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됩니다.

다 망해도 우리만은 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승리적 아벨권을 만들어 주신 것을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긍지와 권위와 자세를 갖추고 주체적인 권한을 상실하지 않는 우리 자신들이 되어야 됩니다. 이때만이 하나님의 슬픔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때만이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효할 수 있고 충할 수 있는, 효와 충을 한꺼번에 성사시켜 아버지 품에 안길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일시에 해원성사 할 수 있는 효자가 될 수 있고 충신이 될 수 있는 길이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사장이 되었는데도 몰라보는 사람이 있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르쳐야 됩니다. 종이 되어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예의 신세를 피치 못할 자리, 구석진 환경을 피치 못할 자리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 원수를 갚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원수를 갚으면 완전복귀가 안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내적 슬픔을 완전히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평면적인 자유해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종의 입장이 철폐되는 것이요, 노예의 입장도 피할 수 있는 것이요, 영어살이도 피할 수 있는 것이요, 죽음길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필히 가겠다고 하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