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세계에 봉화를 들자 1970년 01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8 Search Speeches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가

어떤 젊은 부부가 아들딸을 낳아서 그 아들딸을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사람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그것이 보람있는 삶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이 많은 노인들을 대할 때는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대해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가 많아져 가지고 나이 어린 손자를 얼싸안고 기뻐하는 그 맛은 별맛이라는 거예요. 거기에는 적은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세계에서 맛 볼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는 것입니다.

가을이 오면 열매를 추수할 때가 가까와 오는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때가 가까와지면 줄기나 잎 같은 부수적인 것은 수그러지고 맨 나중에는 열매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본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밤을 심었으면 밤을 수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으면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고 하지요? 어떤 집에서 잔치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 '아이구, 옛날에 우리 아들 장가갈 때 먹던 국수가 먹고 싶다' 하는 것입니다. '돼지고기도 넣고 기름도 발라 어떤 맛있는 음식을 장만했었는데, 그것 참 맛있었지' 하면서 방안에 앉아서 동네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그리게 됩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예요?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그 나라에, 혹은 그 동네에 귀동자가 태어났으면 그 나라나 동네는 그 동자를 훌륭히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동네의 귀한 것을 전부다 모아서 먹이며 키워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를 대표해서 고아원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갖고 하면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지도자를 길러 낼 것입니다.

천년 전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린애 같은데 오늘날 우리 시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린애 같지 않습니까? 같아요, 안 같아요? 천년 전의 할아버지 할머니나 오늘날의 할아버지 할머니나 똑같습니다. 모양은 전부다 동서남북으로 튀어 나와 납작하고 울퉁불퉁하고 별스럽게 생겨 천태만상이지만 마음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해야 됩니다.

그 나라가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를 상속받아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데 상속받는데는 어릴 적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무로 말하면 새순과 마찬가지이므로 역사적인 진액을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을 좋아하는 것은 그러한 뜻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코를 질질 흘리며 우는 애기들에게 '울지 않으면 옛날 얘기해 주지' 하면 금방 울음을 그치고 '해줘' 합니다. 거 참 좋아하거든요. 젖을 먹는 시간 외에는 그것이 제일 좋은 모양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역사를 상속받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지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젊은이도, 늙은이도 다 아닙니다. 젊은 사람만 필요하고 늙은 사람은 불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을 중심삼고 살아야 합니다. 결론이 그렇습니다.

손자들이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다고 손자에게 '야 이녀석아, 너희들이 하는 짓이 왜 그러냐'고 혼내는 것보다도 세계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얘기를 쭉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그 손자는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할아버지 등에 기대려 하고, 할아버지가 어디를 가면 지팡이를 붙들고 졸졸졸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너 이 다음에 커서 이 동네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 되어야 한다' 하면, 아이들은 할아버지한테서 벗어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중심삼고 '너 이 다음에 돈 벌면 나에게 먼저 갈비를 사 주고 너는 내가 먹은 다음에 먹어야 돼' 이렇게 교육하면 며칠, 아니 몇 시간도 못 가서 '할아버지는 갈비밖에 몰라' 하면서 할아버지를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어디 그런가 안 그런가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밥은 조밥을 먹고 입은 옷은 비록 허름한 보자기 같은 것을 둘러쓰고 앉았더라도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에 집이 이랬을 때 이런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폭 넓고 끊임없는 화제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우수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람은 세계와 더불어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이 오늘은 비록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이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본성의 흐름이 나도 모르는 가운데 솟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본성의 흐름은 물질을 가지고 막을 수 없는 것이요, 오늘날 사회제도를 가지고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사 통과할 수 있도록 통일화하는 것은 세계와 더불어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