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우리의 소원 1971년 02월 12일, 한국 영등포교회 Page #37 Search Speeches

선한 길은 위해 주" 길

세상에는 효자 효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는 많이 먹어 왔으니 나만 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효자 효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에게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는 내가 먹고 싶어도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가정 전체를 위해서 염려하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효자 효녀는 가정에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집안 식구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희생하게 되면 자연히 아버지보다도 집안의 중심존재로서 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대표적인 자리에서 희생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그 가정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중심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했지 이런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희생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중심 존재가 아니 되려고 도망가더라도 중심존재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중심존재로 세워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주관하고 지도해 주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선하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선의 길에 자기를 중심삼고 끌어들이는 것이 있습니까?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내 것이다 하는 것이 적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하는 것이 선이예요? 그런 것을 선이라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계가 모두 내 것이다 해도 그것은 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맨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공법은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기에 오로지 선을 향해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좋은 자리로 들어가려면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나라의 것이고,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며,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내 것은 네것이 되고 네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그런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내 것은 내 것이고 네것도 내 것이라는 악한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악이 뭐냐 하면 자기를 중심삼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악은 언젠가는 망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선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 것을 전부 다 가질 수 있게 되는 거라구요. 얼마나 욕심이 나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이 안 갖겠다고 해도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은 너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선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도 자기를 좋아하고 위해 주는 친구를 좋다고 하지요? 그런데 연이어 자기를 서운하게 만드는 친구는 어때요? 서로 헤어지지 말라고 해도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위해 주는 친구에게는 차더라도 달라붙습니다. 달라붙을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달라붙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남아지니까 신난다는 겁니다. 간단한 거라구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렇듯 선은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온유겸손한 자리에서 선이 시작되는 것이요, 희생하는 자리에서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다는 말입니까, 작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선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선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주장하면 가짜요, 그런 가짜는 망합니다. 영영 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의 방안을 모색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탈피할 수 있는 분기점을 찾아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반대로 올라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악한 사람이라 하여도 좋다는 겁니다. 악한 사람에게 선을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그 열매는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악한 사람에게도 선은 있습니다. 따라서 내게 돌아올 때는 그 사람의 선까지 모두가 합해 가지고 돌아옵니다. 선은 마이너스 되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크게 돌아오지, 작아져서 돌아오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그랬나요?「산다고 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논리입니다.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역설적인 논리이지만 인생의 본연의 행로에 있어서 역설적인 논리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