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7집: 구원섭리사의 원리관 -0001년 11월 30일, Page #208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외로운 3년노정

메시아의 길을 자각하게 된 예수님은 자기의 외로운 사정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심각한 장애 요인임을 홀로 안타까워했습니다. 메시아는 참부모이며, 그 사명을 위해서는 실체 신부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천사장이 아담과 남매와 같이 자라던 해와를 거짓 사랑으로 타락시킨 것을 근본적으로 복귀해야 할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아담 대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천사장 형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야 합니다. 그가 바로 사가랴의 딸, 세례 요한의 여동생인 것입니다. 사탄 권세가 주인 노릇 하는 세상에서 이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형성된 보호기대가 있어야만 합니다. 불행하게도 예수님 주변에서는 이와 같은 터전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계시와 영적인 은혜 아래, 처음 가졌던 절대적인 믿음을 계속 가졌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책임을 다했다면 마리아는 3개월 뒤에 그 집을 나왔더라도 계속적으로 그들과 교통하고 의논하였을 것입니다. 사가랴 가정은 예수님 탄생 후에도 땅을 대표하여 제일 앞장서서 메시아를 보호하고 모시면서 증거해야 할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가정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드님으로, 메시아로 지극 정성 모실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받고 절대적으로 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태어난 세례 요한이었으니 그가 회개시킨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인도하는 책임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가랴도 엘리사벳도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만 했지 모신 실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존경받는 제사장인 사가랴가 방관하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무관한 자리에 서게 되므로, 오히려 예수님의 가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백성들이 따르지 못하도록 하고 말았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믿음을 잃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흐를 때에, 예수님이 바라신 신부를 맞는 일을 도왔을 리가 만무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가 예수님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마리아는 해와와 다말을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이므로 요셉과는 약혼 관계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섭리적으로 보면 그들의 관계는 부부간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탄생할 때까지는 물론, 그 후에도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바라심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에 대하여 예수 탄생 후에도 계속 사랑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헤어지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본심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마리아는 요셉과 성적 관계를 맺게 되어 자녀를 가짐으로써 해와의 실수를 반복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이를 조건으로 그들에게 침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한 사람 남기고 모두 사탄의 관장 하에 들어간 결과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지켜야 할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벨 편 형제(세례 요한과 그 형제)도, 가인 편 형제(요셉의 자녀)도 모두 사탄 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탄의 침범을 받으면 이미 영적으로 받은 은혜와 감동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감사를 잃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마리아까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결혼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 한 것도, 가장 귀한 섭리의 요청인 예수님의 신부 맞는 일에 등한시하고서 먼 친척의 혼인잔치를 도우려는 마리아를 책망한 심정이 표출된 것입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마 12:48) 하신 말씀도 이런 기준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사가랴, 엘리사벳으로부터도 반대를 받고, 최후로 세례 요한으로부터도 반대를 받아 육친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명을 완수할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이 영적 기반을 찾아서 다시 복귀섭리를 하시고자 출발한 것이 예수님의 출가였습니다.

출가한 예수님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탄식하였습니다. 가문의 기반을 잃은 예수님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3년노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