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집: 하늘나라의 소유권 1991년 08월 19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281 Search Speeches

선생님을 왕자보다 " 사'한 어머니의 정성

우리 어머니는 선생님을 왕자보다도 더 사랑했습니다. 정말 사랑한 어머니 였지만, 나 돈 한푼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손수건 하나 못 사 드렸습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그 어려운 살림에 매달 미숫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오기 위해서 동네의 사돈집 찾아다니며 쌀 한 줌씩 모아서 미숫가루를 만들어 온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정성이 얼마나 커요! 면회 갈 시일이 되면 밤잠을 안 자고 그 동네에 가서 쌀을 얻고, 안되게 되면 하루 이틀 기다려 가지고 쌀을 모아다가 미숫가루를 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런 어머니 앞에서 그 미숫가루를 전부 다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준 것입니다. 면회하게 되면 한꺼번에 한 군데서 하거든요. 전부 다 나눠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들이 몇 년 동안 면회를 안 와요. 자기 아는 친척까지도 외면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미숫가루를 다 퍼 나눠 주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 어머니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나! 문용기라고 있잖아요, 문장로? 그 집에 가서는 네 활개를 펴고 이놈의 자식이, 부모가 이러는 데도 그럴 수 있느냐고 통곡을 하곤 했다구요. 내가 그걸 압니다. 다 압니다. 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효자 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거예요. 인류의 참부모의 길을 닦아 가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부모는 모르지만 내 자신은 하늘이 보고 있는 그 위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갈 길은 내가 굶더라도 그런 길을, 도를 닦아야 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래서 감옥에서도 내 밥을 절반씩 나눠 주면서 도 닦아 나온 사람이라구요. 그랬는데 가외의 것을 중심삼고 전부 속여 가지고 타고 앉아 자기 먹겠다구? 나 그거 못하는 것입니다.

옷도 그랬습니다. 옷도 간복을 입었어요. 간복. 째져 가지고 살이 보이는 것. 언제고 그 옷입니다. 겨울이 와도 그 옷 입고, 춘하추동 그 옷만 입고 있으니 어머니는 죽을 지경이라구요. 우리가 건강하니까 그래도 배겨내는 거지요. 겨울에 밖에 나갈 때면 아주 춥다구요. 한겨울 동삼삭에 팬츠만 입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혼식 때 만들어 준 옷, 명주 바지가 없나, 있는 것 전부 다 갖다 준 것도 다 나눠 줘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기가 차지요. 면회를 안 가야 될 텐데 안 갈 수 없는 부모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구요.

나를 잘못 봤다고, 그런 어머니를 앞에 놓고 후려갈기는 것입니다. 뭐 뺨을 갈겼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김경계의 아들이 아니라고, 나는 여기에서 감옥에 있는 사람들 전체의 어머니 대신 사명을 하려고 한다고, 그게 틀렸다면 이 자리에서 훈시를 하라고 말이에요. 말은 맞지요. 그러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입을 벌리고 말을 못하고 눈물을 섬뻑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다구요.

그것 보고 내가 이제…. 왜정 말기에 있어서 우리가 졸업할 때는 공과계통의 학생들은 6개월 먼저 졸업했다구요. 그래서 9월에 졸업해 가지고 돌아오게 됐는데, 후에 깨져 나간 곤린마루라는 관부연락선을 타게 됐다구요, 틀림없이. 배 표를 딱 갖고 동경역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발이 안 떨어져요. 아는 거예요, 타면 안된다는 걸. 그래 가지고 어디 간다는 동무들을 찾아가서 가을 캠핑을 가자고 해서 갔는데, 전보는 그 날 몇 시 배를 타고 간다고 딱 보내 놓은 거지요.

그래 가지고 구경을 간 3, 4일 동안에 집에서는 야단이 벌어진 거예요. 틀림없이 그 날 그 시간에 올 건데 배가 깨져 나갔으니 죽었을 것은 틀림없지요. 그러니 어머니가 정신이 나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산 수상경찰서를 찾아가는데, 치마도 안 입고 홑바지 바람으로 간 것입니다. 그때가 여름이니까 고무신 신고 출발했는데 다 집어 던지고 나중에는 맨발 벗고 가다가 아카시아 가시가 발바닥에 박힌 것을 모르고 있다가 2주 후에 돌아와 가지고 그걸 알고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는 `야! 부모의 사랑이 그렇구나!' 했다구요.

그때 어머니는 친척집으로 돌아다니다 보니까 집에서는 어머니까지 잃어버렸다고 야단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보가 그렇게 와 가지고…. 어머니가 2주일 가까운 시일을 그렇게 지냈다구요. 그때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아들한테 있는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 들여 가지고 학교 보내면 문중의 대표가 된다고 희망을 가지고 나왔는데…. 저 녀석은 역적 아니면 왕이 된다는 호칭을 받았다구요. 동네방네에서 다 그런 것입니다. 한 번 결심하면 끝장을 봐야 돼요. 그런 부모를 부모 대접 한 번 못해 봤습니다. 그저 왜경들이 따라다니고, 직접 어머니한테 물어 보고 다니고 그러니…. 그런 사연들이 참 많지요. 어디 간다고 하면 벌써 우리집에까지 파수꾼이 나오고 형사가 따라다니고 그랬습니다. 이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아주 달고 다녔습니다. 왜놈들 한 짓들을 보면 내가 각을 찢어서 말려 먹든지 구워 먹든지 하더라도 한이 안 풀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해방되자마자 야간도망 할 수 있게 도와 줬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나한테 빚을 졌으니 그 빚을 갚으려고 일본의 후손들, 통일교회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현해탄을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게 다 은혜를 갚기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