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동포를 구하기 위해 삼"선을 넘을 각오를 하라이제 여러분은 북으로 가야 됩니다. 북한 공산당들이 남한 땅을 침략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야 됩니다. 그게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나는 이 길을 나서면서, 골짜기에 들어섰던 그때부터 공산당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공산당의 조직 사회를 잘 아는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명을 내놓고 반공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심각한 자리에 있는데도 통일교회 교인들은 낮잠만 자고 있다구요.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린 망명객이 아니예요? 그 일족이 아니냐 이거예요. 일구월심, 지독한 고생을 하더라도, 갖은 수욕의 길을 가더라도 이 나라를 중심삼고 하늘의 올바른 자세와 권위를 가지고 '당신이 찾아 오신 해원성사의 터전이 이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만 비로소 고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비로소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남한 땅만을 가지고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허리가 동강난 것이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귀한 말씀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조상들의 공적을 연결시켜 가지고 난 선생님을 잘 만나서 그런 것입니다. 문씨네 가문에 하나님이 귀엽게 볼 수 있는 공적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 혈통을 타고 나와 가지고…. 그렇게 나왔으면 거기에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인데 이것이 돌아 들어와 가지고 출발을 거꾸로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이렇게 열매맺어야 할 텐데 거꾸로 이렇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정상적인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예수의 가정을 중심삼고 해원성사할 수 있는 실체적 섭리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삼팔선을 넘나들 수 있는 그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고향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지장을 받지 않고, 선생님의 고향에 선생님의 친척들이 있어서 여러분을 맞아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할 때 그 일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도 어머니를 못 만나 봤습니다. 부모를 못 만나 봤어요. 평양에서 고향까지는 이백 팔십 리예요. 잠깐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 왜 못 갔느냐? 선생님과 신앙으로 인연되었던 사람들을 다 찾아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다 찾아보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무덤까지 찾아가서 '너희들은 배반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나는 배반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했습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약속을 했으면 나는 끝까지 그 약속을 세워 놓고 지키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정성껏 따르던 그런 사람들을 중심삼고…. 여러분! 내가 미국에 가면서 여러분에게 1월 18일이 무슨 날인가를 기도 해서 알아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그거 생각나요? 그 날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이거예요. 그 날이 선생님에게는 가장 슬펐던 날입니다. 돈이 없어 슬펐던 날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 슬펐던 날도 아닙니다.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내가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축복의 기도를 해주고 그들과 약속을 한 날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저버렸을지라도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다는 사실을 중심삼고 만장(萬丈)의 편지를 써서 세 번씩이나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편지를 갖다 줬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되돌려 보낸 것입니다. 선생님은 되돌려받은 그 편지를 가지고 이북에서 나왔습니다. 경북 영천에 들어가 보면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에서 1월 18일에 그 편지를 읽으면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남한 땅에 내려 와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길을 다시 가야 되었습니다. 그 영천이라는 말이 아주 재미있는 말이예요.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