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집: 고향 1989년 02월 1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98 Search Speeches

고향은 심정 가운데 남아진 박물관 같은 것

아들딸 하나 살리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 불쌍하다구요. 시골에서 많은 아들딸 거느리고 생활하려면, 옛날 왜정 때에 요즘처럼 돈 주고 싸구려로 살 수 있는 나일론 같은 것이 있기나 하나요? 전부 다 옷이라는 것은 무명이예요, 무명. 무명 알지요? 「예」 목화를 심어 가지고 전부 다 씨를 빼 가지고 갈라 가지고…. 그걸 물레질이라고 해요. 이래 가지고 길쌈을 해서 옷을 만든다구요.

우리 어머니가 많은 아들딸을…. 일하는 게 참 빠르거든요. 설피다구요. 보통 열 새…. 요즘 신식 부인들은 열 새라고 하면 뭣인지 모를 거라. 그런 것 알아요? 여기 나이 많은 할머니, 아줌마들은 알겠구만. 한 새가 몇 올이예요? 「스무 올이요」 그래 스무 올이예요. 그래, 열 새면 좌우편으로 이래 가지고 2백 올이 이렇게 갈라져야지요. 그래, 보름 새 하게 되면 얼마인가요? 3백 올이 들어가요. 거 가늘지요. 광목보다 더 아름답다구요, 보오얗게.

어머니가 그렇게 길쌈을 잘하셨습니다. 보통 사람의 2배 이상이예요, 2배 이상. 열 새짜리를 치면 뭐 하루 한나절이면 마흔 자를…. 한 필이 마흔 자예요, 이게. 하루에 여덟 시간 하게 되면 말이예요, 열다섯 자, 스무 자를 짜는 거예요. 40자가 한 필인데 그걸 이틀 이내에….

보통 사람은 이 40자를 짜려면 하루에 다섯 자씩을 해도 8일이 걸릴 것인데, 어머니는 하루 반이면 돼요. 어떤 때 바쁠 때는 뭐 하루에 한 필, 여덟 새, 아홉 새 하루에 한 필을 짜는 거예요. 그런 등등….

어머니가 그렇게 많은 베를 짜면서 다리가 부어 가지고 와 가지고는 나한테 보여 주지요. 보여 주면, `다리 안 아파, 엄마? 종일 했으니 얼마나 아파!' 하면 `아프긴 뭘 아파? 그거 안 하면 어떻게 하노?'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다리를 보여 주며 `자, 이거 봐라' 해서 만져 보니까 다리가 쑥 들어가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가지고 그걸 탄하지 않고 자기의 몸을 이기고 수고하던 그 어머니의 모습, 그런 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한 부모….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를 중심삼고 모든…. 멀리 가면 갈수록 제일 그리운 것이 어머니예요, 어머니하고 그다음엔 자기가 놀던 형제들, 그다음엔 누이동생들, 자기가 몹쓸….

우리 누나가 있었어요. 손 위의 누나가. 나보다 두 살 위의 누나, 두 살박이 터울인 누나가 있었는데, 이 누나는 나를 참 사랑했어요. 누구보다도 사랑했다구요. 내가 무엇이 없어서 야단하면 자기…. 처녀 때는 그렇잖아요? 시집가기 전에는 말이예요, 요만한 보따리들을 다 갖고 있다구요. 여러분도 그랬어요? 그 보따리를 가지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나 무엇이 필요해' 하면….

엄마보고 뭐가 필요하다고 잉잉거리면 엄마가 매일같이 그걸 준비하나요? 그러면 이 누님은 가 가지고 보따리를 뒤져 가지고 나를 불러다가 `야야, 여기 있다. 여기 있다' 그러던 그 누나 생각…. 그런 모든 것이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엉클어진…. 그거 잊을 수 없는 것이예요. 요즘과 같이 이렇게 나이 많은 것보다 어렸을 때 그 모든 인상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자,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격 소양을 중심삼은, 자기를 키워 나가는 데 있어서의 정서적인 면이나 생활적인 면이나…. 전부 다 배우는 것 아니예요?

한국 사람 하게 되면, 한국 사람 옷을 말하자면 뭐 딴 데 가서 배우나요? 고향에서 다 배우지 않아요? 어떻게 입고 뭐 어떻게 하고 말이예요. 뭣이 좋고 나쁘고 다 배우는 거예요. 그다음엔 생활하는 모든 것, 어떻게 사는지 전부 다 배우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보게 될 때, 그 모든 전부가, 정서적인 배경이 깊어질 수 있는 모든 인연을 갖고 있고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생을 두고 볼 때, 그렇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서적인 것 가운데 제일 잊혀지지 않는 건 어머니한테 칭찬받은 것보다도 매 맞은 거예요. 잘못해서 매맞은 건 당연하지요. 이건 뭐 잘못도 안 했는데 매를 맞았다 이겁니다.

우리 성격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까닭없이 이랬다가는 일보도 양보를 안 합니다. 또 우리 어머니 성격은, 나를 낳아 놓은 어머니 성격이 뭐 나한테 지고 싶겠어요? (웃음) `요놈의 자식, 무슨 말대꾸야? 이거 하랬는데 뭐 이건 안 하고…' 한다구요. 그러면 `이거 안 됩니다' 하고 맞서요. 맞서게 되면 한마디 해서 안 듣고 두 마디 해서 안 듣고 세 마디 해서 안 들으면 이놈의 자식이 에미 속을 이렇게 썩인다고 그러던 것이 눈에 선해요. (웃음) 지금도 선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항해요. `엄마는 언제나 그래, 언제나. 왜 그래? 엄마가 남의 엄마야?' 그러거든요. (웃음) 그런 것이 뭐…. 지금도 그런 고향에서의 인상적인 과거시대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 가지고 이놈의 자식 안 되겠다고 그저…. 그럴 것 아니예요? 나이 어린 애가 가만 놔두면 버릇이 없어지고 그러겠으니 교육삼아 가지고 한번 기합을 줘야 되겠다 하고 냅다 갈겨대야지요. 그러면 나 하나도 잘못 안 했다고…. 우리 성격이 얼마나 거세나요? 잘못하지 않은 데는 일보도 양보 안 한다구요. (녹음이 잠시 끊김)

뭐 그동안 어머니는 어땠겠어요? `아이구, 내가 잘 때려서 너 쓰러졌다'고 생각하겠나요? `아이구, 큰일났다!' 해 가지고 울고…. 알고 보니까 울고불고 야단하고 말이예요, 형제들 붙들고 `야야, 잘못했다' 이러면서 눈물 흘리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했구만! 잘했어' 그랬어요. (웃음) 그 말 들으니까 나쁘지 않더구만, 그게. (웃음) 그때서부터는…. 뭐 열두 살쯤 돼 가지고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거 안 되겠습니다' 이러면 벌써 알아요. 그런 얘기가 참 많지요. 그런 얘기 많다구요. 그런 것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내가 어느 방에서 어디 앉고, 어머니는 얼굴이 어떻고 이러던 것, 선해 가지고 그 느끼던 사실…. 지금 와 보니 그것이 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하나의 중심으로 남아진 사실을 볼 때, 그것은 일반사람들이 싸움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는 정이 교류되면서 자기 일가를 생각하고, 자녀를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이 거기 꽂혀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이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할 때는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운지 말이예요. 그렇다구요.

그래, 어머니는 나쁜 것? 「좋으신 분」 어머니는 좋은 분이예요. 잘생겼든지 못생겼든지간에 어머니는 좋으신 분입니다. 물론 나쁜 부류도 있겠지요. 요즘에는 애기를 팔아먹고 뭐 그런 것도 있잖아요? (웃음)

이렇게 볼 때에 좋았던 일보다도 자기가 잊을 수 없었던 그런…. 매를 맞고 이러던 추억이 남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집을 중심삼고 이웃 동네와의 관계, 이웃 동네 고향 마을 있잖아요? 거기에는 친구도 있고…. 거기 마을 가운데는 전부 다 문씨만 사나요? 다른 성이 들어와 가지고 이씨도 와 있고, 김씨도 와 있어요.

이러면 말이예요, 고향 어른들이 전부 다 텃세를 하는 거예요. 동네에 자기네는 사촌·오촌·칠촌 많지만, 외로이 혼자 들어와 사는 김씨면 말이예요, 그 한 집안밖에 없거든요. 이러면 동네에서 뭐 어떻고 어떻고…. 자기네들은 사돈팔촌까지 나누어 쓰면서 말이예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안 빌려 주거든요. 그런 뭐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난 못 견뎌요.

이래 가지고, 거 왔다 가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가 안 빌려 주면 내가 메어다가라도 갖다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잘 못사는…. 남의 문중에, 자리잡고 있는 문중에 지나가는 손님이 들어와 사니 잘살 리 만무하거든요. 뭐 천대를 하고…. 이런 일은 못 견디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라던 그 모든 사실…. 아하! 그때 그 마음의 바탕이 오늘날 내가 이 통일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교육의 한 판도였구나 하는 사실들….

이렇기 때문에 고향은 자기의 잊을 수 없는 교재요, 심정 가운데 남겨진 박물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그래서 고향을 잊을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