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집: 하나님의 섭리의 완성 1982년 10월 30일, 한국 리틀엔젤스예술회관 Page #299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것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므로 그 절대자가 경영하는 뜻도 절대적이어야 되고, 뜻이 가는 길도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끝날이 돼 오면 돼 올수록 모든 교파는 하나로 구성되어 가지고 절대적인 뜻의 완결에로 귀결되어야 할 텐데, 이것이 사방으로 흩어져 갑니다. 중심을 찾을 수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교파를 많이 만드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오신 분들도 그렇지 않다고 볼 거예요.

합해야 할 텐데, 하나되어야 할 텐데 왜 하나 못 되느냐? 하나님의 뜻의 내적인 의의가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 끼리끼리 교파라는 하나의 단체를 세워 가지고 사회와 접촉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으로 활용하기 위한 교단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이 찾고 있는 진정한 참다운 교회, 교회를 넘어서 교단, 이것을 결정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기독교만 그런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 불교면 불교도 많은 종파를 갖고 있습니다. 유교면 유교를 보더라도 그렇고 힌두교면 힌두교도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이름을 갖고 있는 모든 종교는 여러 종파로 분열된 가운데서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필요 적절해서 민족 문화의 배경에 따라, 지역적인 환경의 상이에 따라 섭리의 완결에로, 섭리의 완성에로 총결산하기 위한 준비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종교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세계의 종교가 벽에 부딪혔습니다. 더더욱이 공산주의라는 주의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는 물질주의를 중심삼은 공산주의로 말미암아 전세계 기독교는 벽에 부딪쳤어요. 그리고 그것은 세계적인 사상의 체계를 갖추어 가지고 젊은 지성인들을 흡수하고도 남음이 있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은 교회에서 전부 다 빠져 나갑니다.

오늘날 현재의 기독교만 보더라도, 젊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생활에 철저해 가지고 하나님의 본연의 뜻 세계를 추구하여야 할 텐데, 젊은이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교회에서 떠나는 실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은 그럼 나이 많은 사람들만 좋아하시는 분이냐? 40대 이상을 넘고 5, 60대 7, 80대가 되어 엎드려서 지상에 천국이 오게 해 달라고, 주님이 와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만을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냐? 이거 문제가 커요.

뜻이 그렇다면 뜻의 완성을 위해서 책임을 지고 활동을 해야 할 사람은 무식한 사람들이냐? 무식한 사람들을 통해서 완성시키고 싶겠느냐, 세계의 지성인인 지극히 똑똑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섭리의 완성을 시키고 싶겠느냐? 이렇게 반문해 본다면 하나님은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대답 안 한다고 봅니다. 모든 면에서 사리에 밝고 현사회에서 주체적인 능력을 가지고 천운을 가려 가면서 소화할 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젊은이를 통해서 섭리의 완성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것이냐, 이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오늘날 현재의 기독교의 교직자들 혹은 수많은 신학자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신학 이론을 세계에 파급시켜 가지고 그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혹은 수많은 유명한 부흥 강사, 혹은 유명한 교직자들 중에는 그 당대에 하늘의 사자라고 공인받는 생애를 거쳐가는 사람이 있지만, 어찌하여 젊은 세대, 젊은이들을 하나님의 뜻의 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젊은이로 교육을 못 하느냐 하는 거예요. 여기에 대하여 책임 추궁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이런 등등….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했는데, 독생자를 주신 것은 어떤 개인을 위해서 준 것이 아니예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이러한 것이 본질적인 내용인데, 지금까지 신앙하는 사람들은 나만을 위해 죽었다고, 나만을 위해서 왔다고 해왔어요. 이런 생각이 지극히 용서할 수 없는 착오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김 아무개 목사면 김 아무개 목사 한 분이 구원받는 것을 원할 것이냐? 어떤 장로 한 분이 구원받는 것을 원할 것이냐? 더 나아가서는 그 장로가 살고 목사가 살고 그 나라가 구원받는 것을 원할 것이냐? 이렇게 묻게 될 때, 아무리 훌륭한 목사, 훌륭한 장로님들도 '그야 물을 것이 없지요. 나보다도 우리 나라가 구원받는 그것을 하나님은 원할 것임에 틀림없소'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자, 한 나라가 구원받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섰다 한다면 그 나라만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끝을 맞이해야 되겠느냐? 아니라는 거예요. 한 나라의 구원에 앞서서 하나의 세계 구원을 염두에 두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의 세계, 한 세계를 구원하는 데에 구세주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오늘날의 기독교 신자들 중에 그러한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혹은 심각히 생각하고 문제삼아 가지고 활동하는 지도자가 있을는지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