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미처 몰랐습니다 1972년 08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심정의 근원된 어버이로 모시자

이렇게 볼 때에, 도의 길이라는 것은 그 자체들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환경에 갖추어진 모든 교회의 교권, 교세를 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교세를 나타낸 장본인, 즉 교주면 교주를 통하여 보다 차원 높은 내연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갈 길을 잃어버린 이 세계 인류 앞에 가야 할 방향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종교인들 앞에 금후의 방향을 어떻게 가려 줄 것이냐? 이런 문제를 여러분들은 무관심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심각한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는 세계사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일국의 흥망을 가리기 위한 주권자의 고통도 크거늘, 만국 만세의 해방을 위하여 도의 승리의 터전을 해결짓기 위해 노력하는 그 누가 이 땅 위에 있다면 그는 위대한 분일 것입니다. 반면에 그는 누구보다도 비장하고 누구보다도 처절한 자리에 서서 인생의 절박한 문제를 추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자리를 해결지을 때까지 그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 무엇이 이 땅에 나타나기 전에는 인류의 역사적인 연장이 계속될 것이고, 혹은 인류가 소망하는 새로운 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차제에 우리는 처해 있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통하여 할 짓은 이미 다 해봤다 이거예요. 힘으로도 해봤고, 물질만능을 주장하던 물질의 능력을 가지고도 해봤고,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논하는 그 지식을 최고조로 동원해 가지고 다 해봤지만, 인류의 제2의 해방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한 단계에 우리는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물질을 동원해서 해봤고 사람을 동원해서 해봤는데, 아직까지 해보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들은 물질을 원합니다. 그리고 인격을 원합니다. 그 다음에 자기에게 돈이 있고, 학박사가 된 후에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세계를 자기의 무대로 삼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세계를 유람하며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 아니겠느냐? 인간들은 이런 단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물질을 가지고도 해봤고, 인간의 모든 지혜와 권위를 다 통해서도 해봤지만, 실패의 일로에 봉착했습니다. 이제 한 가지 해볼 문제가 있다면 사랑입니다. 사랑의 역사를 들어 가지고 그저 한번 해볼 수 있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생겨날 것이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이냐? 지금까지는 인간을 중심삼은 물질을 주장했고, 인간을 중심삼은 인간의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인간끼리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에 사랑의 길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기원해야 됩니다. 아까 말한 20대의 젊은이 문제에 대한 해결기점은 하나님이 가담하든가, 그 다음에는 그 역사를 아는 선조가 가담하든가 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요, 조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교리의 골자가 무엇이냐?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자, 인류의 근본 부모로 하자, 심정의 근원된 어버이로 찾자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뭘 하자는 것이냐? 조상을 찾자 이거예요. 여기에서 귀결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부모를 가졌기 때문에, 거짓 부모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고, 그러한 역사적인 실정을, 세계적인 실정으로 맺어진 이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기원 밑에서, 하나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상대적 입장의 인류의 참된 부모를 찾자는 거예요. 여기가 통일교회가 가야 할 최후의 목적지요, 이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심정생활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 땅 위에 인간을 중심삼고 심정적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우리 조상을 기원으로 한 심정적 역사를 논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를 바라보고 나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과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세계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기성적인 차원과 달라요. 이것은 혁신적인 차원이요, 보다 고차적인 차원입니다. 거기서부터 관계맺어 출발한 것은 평면적인 정서가 아니라 입체적인 정서적 내용을 갖고 출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