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뜻이여 성취하소서 1970년 01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1 Search Speeches

3대가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70년대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의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임이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7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때를 맞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일치될 수 있는 조건물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시해야 할 조건물에는 선생님 자신이 드려야 할 조건물도 있지만 통일교회로서 드려야 할 조건물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예수의 뜻과 그 제자들의 뜻이 일치되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과 통일교회를 중심한 뜻과 선생님의 뜻이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또한, 선생님의 뜻과 선생님을 대하는 여러분의 뜻도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일치되는 데는 일직선으로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각각 떨어진 자리에서는 일치가 안 됩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일치시키려고 하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일직선으로 서로 일치시켜 가지고 나가야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일치시켜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제자들의 뜻과 일치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갈 길을 가려 해도 못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아닌 그 이상의 어떠한 길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미 길을 결정해 놓고 결정적인 기반 위에서 '나는 이제 간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목적과 방향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체가 안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믿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말씀은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꼭 교회에 나가야 되나?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그 말씀대로 살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에 딱 나와 있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보면, 하나님의 뜻과 선생님의 뜻과 여러분의 뜻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그것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방향을 잡고, 그런 다음에 조건물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치되지 않고는 아무리 때가 무르익었다 하더라도 뜻 성사는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3대가 합해져서 하나의 제물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사적인 전체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사람을 세워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그 후손과 일치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일치를 이루는 것이 사위기대입니다. 가정을 보게 되면 3대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그의 자녀까지 해서 결국 3대입니다. 그렇지요? 왜 사위기대를 필요로 하느냐? 이것이 이루어지면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위기대가 완성되지 않으면 종횡이 일치되는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위기대라는 것은 3대가 일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과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할 사람들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되지 않으면 뜻이 성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대로 남아졌고, 예수의 고통은 예수의 고통대로 남아지게 되었으며, 제자들의 고통은 제자들의 고통대로 남아졌던 것입니다.

그 고통 역시 갈라져서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한마음으로 일치된 입장에서 고통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고충을 느끼고, 예수는 예수대로 고충을 느끼고, 제자들은 제자들대로 고충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3대의 고충이 어느때에 결속되느냐? 죽음의 고개를 넘지 않으면 결속되지 않겠기 때문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고개를 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예수의 뜻과 일치되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일치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 고충을 주었고, 예수님께 고충을 주었던 제자들은 영원히 영원히 구속받을 길이 없었으나, 죽음의 길을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심정적 기반과 실천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뜻의 방향에 반대되었던 자신들을 뜻과 일치되는 입장에 세워 놓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