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집: 수난의 길과 해방운동 1971년 09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8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아"의 자리" 어떠한 권위를 가진 자리냐

그러면 그 아들의 자리는 어떠한 권위를 가진 자리냐? 그 아들이 어떠한 권위를 갖고 나오기를 바라느냐?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한 가정의 가주(家主)로서 몇 사람의 어버이가 된 아버지, 거기에서도 좋은 아버지가 됐느니 못 됐느니 하는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원하느냐? 아닌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자녀들로 하여금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어떠한 종족의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어떤 한 나라를 중심삼은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절대자이니만큼 절대자의 자리에 선 아들, 그런 아들의 권위를 가진 아들을 원할 것입니다. 그 아들이란 권위를 가진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국가적인 기준도 아니라구요. 이것은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더 넘어서 오늘 통일교회 술어를 빌려 얘기하면 천주적이어야 됩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도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다 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어린아이들에게도 다 있다구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다 있다구요. 세계를 내 것 만들면 좋겠다. 가령 세계를 자기 것 만들었다 하면 말이예요. 그것을 자기것 만든 후에 다시 어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 만들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거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분을 자기 것 만들었는데 그분 앞에 더 좋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고것 난 싫소' 하겠어요? 그분을 내 것 만들었으면 그 다음엔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거예요. 그 이상의 것이 뭐냐? 하나님을 내 것 만들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고 아무리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인연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그자 나요 나자 그'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무슨 자리냐?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런 사랑을 중심삼고야 영원한 사랑이 인간세상에 관계를 맺지,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주체라면 우리 인간이 그분과 그러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사랑의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는 인간 세상에는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어떠한 소망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의 기원이요, 행복의 기원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분야를 절대시한 터전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세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구요. 상대적 여건을 중심삼고 깊고 넓고 높게 세계 이상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심정의 터전을 갖고 서게 될 때 그 앞에 외적으로 갖추어진 그 권위가 내적으로도 빛나는 것이지, 내적 기준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는 아무리 외적 기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리어 불행을 자초하는 조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과는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맺어진 것이냐? 이런 근본 문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의 중심인데 이 우주의 중심은 뭐냐고 묻게 되면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라는 답을 가끔 얻게 됩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냐? 한마디로 딱 결론을 지어 주는데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거 보통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를 말하는 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부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을 보통 생각하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즉 인륜도덕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을 말하는 줄 알고 있다구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체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관계의 정(情)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는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