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집: 기쁜 날을 맞는 자가 되자 1962년 03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7 Search Speeches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과-

그러자니 여기에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천주적인 지도자, 양심적인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가장 중심되는 분이 어떠한 인간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버리고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을 믿다가는 다 망합니다.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온 인류 앞에 심령을 개척하여 절대자를 찾기 위해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기쁨의 한 날을 맞기 위하여 수고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홀로는 그 날을 맞을 수 없습니다. 인간과 공동으로 해야 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하늘을 부르는 것이 상식입니다. 소망을 잃고 죽은 자와는 달리 소망을 잃지 않은 자가 있다면, 양심의 직고는 공식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하는 것은 최후의 선언이요, 유언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타락할 수 없습니다. 발전은 있어도 퇴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은 아십니다. 거기가 인간의 종착점입니다.

부모가 아들딸을 불러 놓고 `너는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고, 또 어떠어떠한 일을 하라'고 가르친다 해도 `너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은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죽기 전에 `하나님!'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야 할 유언입니다. 슬픔이 연속되는 가운데에서도 최후의 말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아들딸이 살인강도로 교수형을 받아 최후를 맞게 될 때 그것을 보고 '아이고 하나님, 내 아들딸 죽으니 감사합니다' 할 부모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법이야 어떻든지 '하나님, 우리 아들딸을 살려 주십시오' 합니다. 악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기에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분하다고 칼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보다도 그것을 꽉 누르고 '하나님!'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러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숨겨진 하늘의 손길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들은 모두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함이 있어 당장 풀어야 할 때는 '하나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하는 것이 그 어떠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들은 기쁜 모습으로 이 세계에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이 어렵고 분하고, 복잡하면 할수록 그 속에서 '아버지!' 하며 외치는 사람이 도의 생활에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본위의 생활을 하지만, 도인들은 내 가정, 내 민족, 혹은 세계의 잘못된 모든 것이 내 죄요 내 잘못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붙들고 나오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이라는 말을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 할진대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찾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1대에 한 유언이 하나님의 유언과 들어맞아 '네 것이자 내 것이다'할 수 있는 입장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오시는 이가 메시아입니다. 이분이 와서 이 땅의 인간들을 대표하여 기쁨의 한 날을 찾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유언을 할 수 있는 개인, 가정, 민족, 세계가 있습니까? 없으면 망합니다.

여기에 모인 수련생 여러분은 하늘과 더불어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평탄하지 못했던 과거를 가진 그대로 멸망의 도가니에 쓰러지는 불쌍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여 오늘의 나는 발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기쁨의 한날을 맞는데 있어 방해꾼입니다. 여러분은 과거보다 나아졌어요? 나아진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모든 손을 들었음─그래야 됩니다.

지식과 건강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부족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 속에서 눈을 높이 떠 창조주는 어떠할 것이냐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자리는 얼마나 엄숙하고 거룩한 자리인지 모릅니다. 돈 천만 원이나 억만 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아졌느냐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