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집: 복귀의 한계점 1970년 12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8 Search Speeches

공적 생활의 한계선

앞으로 이민은 누가 가야 되느냐? 공적인 일을 위해서 학교를 포기한 사람들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 나온 사람들이 가는 겁니다. 지금 현재는 공부도 못하고 지지리 못난 사람들이 이민을 가지요? 남의 나라에 가서 신세를 지고 살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자신의 신세를 지게끔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는 겁니다. 모든 사고 방식이 이렇게 벌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한다'의 한계가 어디냐? 여덟 시간 일하게 되어 있는데 그 여덟 시간의 일을 다했다고 해서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했다고 할 수 있어요? 다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이 어디냐? 공적인 일을 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이 어디냐? 어디에서 끝을 맺을 것이냐?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복귀의 한계점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점은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 말씀이 참 진리라는 거예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놓고 하신 말씀입니다. 공적인 일을 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워요? 죽기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부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워요? 공부도 죽지 못해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공부를 한다면 죽기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놀 것도 못 놀고, 이것도 부정, 저것도 부정, 모든 걸 부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따뜻한 봄날을 맞아 남들은 전부다 소풍을 가는데 난 혼자 방에 앉아서 이 놀음을 해야 하니 이게 무슨 팔자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극복해야 됩니다. 극복하지 않고서는 공적인 목적이 성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극복해야 되느냐? 내 생명의 한계까지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 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내 뜻은 사적이고 아버지의 뜻은 공적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딱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공적인 한계선이 어디라고요? 생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하는 데는 대한민국 안방 구석에서 바느질하는 아주머니에게까지도 통합니다. 세계 끝까지도 통합니다. 마음을 다하는 데는 다 적용됩니다. 평등입니다. 여기에는 절대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겁니다.

나무를 두고 볼 때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잎이 있습니다. 이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해요? 「뿌리가 중요합니다」 뿌리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잎이 없는 겨울에 자라요, 안 자라요? 안 자랍니다. 왜 안 자라요? 나무는 잎이 없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잎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자라는 데는 뿌리가 중요해요, 잎이 중요해요? 어떤 것이 중요해요? 「똑같이 중요합니다」 뿌리가 중요한 것 같지만 잎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대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생명을 걸고 있는 거예요. 뿌리도 잎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대등한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만약 뿌리가 잎사귀와 서로 상관이 없다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살아요, 죽어요? 「죽습니다」 망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평등한 것입니다. 생명을 같이 걸고 있는 데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눈과 머리카락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똑같이 중요합니다」 왜 똑같이 중요해요? 머리카락은 몇개 뽑아도 관계없지 않아요? 그러나 머리카락이 없으면 머리속이 열을 받지요? (웃음) 하나님은 인간을 참 잘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 열을 막는 작용을 해야 되지 않아요? 그러니 머리카락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거에요.

생명을 다하는 데는 뭐라구요? 평등합니다. 아무리 깊은 골짜기의 안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더라도 공적인 입장일 때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다해서 가는 사람은 나라의 중책을 진 좌정승 우정승이 못되고 충신의 칭호를 받지 않더라도 당당히 충신과 대등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앞으로 이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위험하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