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뜻 앞에 설 수 있는 최후의 승리자 1965년 01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0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겪으신 시련과 탕감의 생활

그러면 예수님의 개인 출발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 가정입니다. 유대교에 있어서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교법사들이 예수님 개인의 터전이 되어 주었더라면 예수님은 가정적인 터전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가정들이 예수님의 가정적인 터전이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그 가정들을 모두 규합하여 종족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민족적인 터전과 국가적인 터전까지 마련한 후 그 위에 역사적인 전통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기에 예수님은 비참한 환경에 놓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 예수님의 세 제자, 오! 예수님의 12사도'라고들 하지만 그렇게 못난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죽했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어부를 찾아 다녔겠습니까? 거기에는 역사적인 고충이 있었던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수고하여 세워 놓은 유대 나라의 지도자들이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메시아가 왔을 때 제대로 된 제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까? 예수님 앞에 진정한 제자가 있었습니까? 그때에 4천년 역사를 책임진 대제사장, 아브라함보다도 훌륭한 대제사장 가야바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외적인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4천년 역사 전체를 대신한 민족의 대표자로서의 시련과 생활적인 대표자로서의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가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내용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생활은 그저 밥 먹고 사는 그런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내외적으로 고충을 겪으며 역사적인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사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뜻을 이루었는데, 그것이 곧 영적 구원역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오늘날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체의 뜻을 중심삼고 횡적인 생활을 하는 기준, 즉 시련과 탕감의 생활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실제적인 면에서 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울타리를 만들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생활적인 종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지금까지 2천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예수님의 뜻을 상속받아 예수님의 가정적인 이념,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이념을 목표로 삼고 그 테두리를 에워싸고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복귀의 사명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2천년 동안 무엇을 해 나왔는가? 육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영적으로 투쟁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 2천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서 역사적으로 닦아 놓은 모든 기반을 개인적인 시기에 상속받았더라면 개인적인 싸움이 전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가정적인 싸움 또한 전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이미 종족적으로 세워 놓은 예수님의 기준을 상속받기만 하면 될 것인데,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다시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는 횡적 섭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활무대의 중심이었던 크나큰 대우주의 이념, 그 불변의 뜻을 중심삼고 생활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전개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영육을 합한 실체의 이념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만을 중심한 이념인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 가자는 이념이에요.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영육을 합해서 뜻을 이루어야지요.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은 개인적인 대표자로서 영육 모두의 시련을 받았습니다. 민족의 대표자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우리 조상들은 영육을 합해 가지고 사탄과 싸워 나왔지, 영적으로만 싸워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체로 세운 이스라엘 나라, 실체로 세운 유대교가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다 깨져나갔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적으로만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 영적 기준에서 유대교를 대신한 종교가 오늘의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이 종말시대에 예수님이 오셨던 그 당시의 환경을 영적으로 재현시켰으니, 영적 기준에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유대교의 사명을 해야 할 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의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교 사상에 커다란 혼란이 벌어져서 전통이 흔들리는 환경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의 사상에도 그때와 같은 현상이 벌어질 끝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