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1959년 02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7 Search Speeches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라보아야 할 이유

우리는 다시 눈을 떠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황공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잠 가운데서, 사망의 세계에서 갈팡질팡 허덕이면서 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죽음을 앞에 놓고 탄식해 온 인간들을 하늘은 어느 한날 어느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시고 지켜 보셨고, 배역하는 인류를 몇천만 번이나 재인식하셨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슬픈 일면 고마움의 심정에 사무쳐 통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이 오늘날까지 우리의 생명을 붙들고 다시 바라보기를 몇 번이나 하셨던고! 하늘은 우리의 생애 노정과 이념적인 조건을 붙들고, 우리가 소원하는 일체의 조건을 분들고,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때에도 그 조건을 통하여 우리를 바라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슬픔을 아십니까? 우리의 처참함과 슬픔에 비할 수 없는 하늘의 처참함을 느껴본 때가 있었습니까? 없다 할진대는 오늘날 6천년 역사의 종말에 서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할래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담을 전부 다 깨고 본연의 아담의 위치로 돌아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그 한시간이 오기 전에는 인류의 근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우리들은 다시 눈이 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신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명을 맡고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을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동시에 이 시대를 다시 바라보고 앞으로 올 시대를 염려하며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하면서 다시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보면서도 여러분에게 `하늘이시여'하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의 소망은 끊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가는 길이 왜 다 막히느냐? 종교를 세워 인도하던 성직자마저도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막혀 버리고 철학이나 과학이니 하는 것도 전부 막히는 원인은 무엇이뇨? 그것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니고 있던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그것을 저버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하는 마음과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으로 슬퍼하는 사람, 그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인류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망해 들어가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여 나서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서 먼저 외치면 안 됩니다. 먼저는 북바치는 마음으로 하늘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 민족을 위하여 외쳐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민족은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거합니다.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찾아도 찾을 수 없고 허덕여도 해결점이 나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추방해 버리고,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는 공(空)의 상태에서 다시 눈을 뜨는 그 날, 그 순간은 곧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순간이 될 것이며, 새로운 인생이 출발되는 순간이 될것이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재창조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정전으로 녹음이 잠시 중단됨)

하늘을 대해 기도하면서 하늘을 찾아 헤맸던 예수였던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준비 기간에 있었던 예수는 형제들이 기뻐한다고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없었고, 친척과 이웃이 즐거워한다고 같이 즐거워 할 수 없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에 하늘이 바라는 방향과 전세계 인류의 방향이 너무나 차이가 있는 것을 바라보고,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예수님은 더 굳은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입을 다물고 지냈던 예수님의 30년 준비기간의 슬픔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30년 준비기간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은 하나의 개척자로서 가정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죽음의 고개가 닥쳐와도 나는 간다, 피곤한 길일지라도 나는 간다,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라는 마음을 품으시고, 자기의 환경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정전으로 녹음이 잠시 중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