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집: 전진과 후퇴 1970년 11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6 Search Speeches

순수한 선의 입장

발전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발전을 추구하기 전에 자기 자체내의 순수성을 어떻게 조성하느냐 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요, 정성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정성은 그냥 들여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들여야 됩니다. 과거의 의식이 남아 있다면 그 의식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과거의 의식에 내가 도취하여 얼마나 강한 입장에 서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과거가 순수했느냐고 비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입장에 처했었다면 선했느냐 하는 것을 비판해야 되고, 현재 그런 입장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비판해야 됩니다. 또 내가 바라는 소원이 순수하냐 하는 것을 비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수한 선의 입장이란 무엇이냐? 자기를 위하는 데 있어서는 순수한 선은 존속할 수 없습니다. 선은 자기를 강화시키는 데는 존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존속하지 않느냐?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하나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선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은 선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선의 주인은 타락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중심삼고 볼 때, 나를 높이고 나를 빛내기 위한 자리에서 선을 추구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자리이지 하나님을 모셔드리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나'라는 것이 도착해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의 중심으로 임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은 보다 큰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자 할 때에도 내 개인이 부활되는 은혜를 받고자 해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은혜를 받고자 해서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다 큰 선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자기의 의식이 고착된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식 자체가 선을 중심삼고 이동할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입장의 자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시켜야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새로운 보급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이 마이너스를 작용시킬 수 있는 완전한 플러스는 벌써 임재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은혜의 자리에 나가게 되면 하나님이 언제 오셨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벌써부터 계셨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로서는 미칠 수 없는 인연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식관념을 초월한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제한된 한계선에서만 충족시킬 것이 아니라 그 한계선을 넘은 자리에서 충족시키라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은 내적인 자리를 잡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태와 형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만약 형태와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인격을 형성하는 요인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의식기관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임재해 계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순수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순수해야 되느냐 하면 거울로 말하면 평면경처럼 순수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