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집: 참부모와 중생III 1993년 10월 17일, 한국 본부교회 Page #62 Search Speeches

보다 많이 투입한 사람이 주인 되" 것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러한 관을 중심삼고 단적으로 결론지어 말하면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 투입한다는 것은 자기의 자체에 있어서 자기 것을 전부 다 투입한다는 거예요. 자기 것을 뜯어서 자기 자체는 작아지고 큰 것에 보태 주겠다고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거예요. 많이 투입한 사람이 주인이 됩니다. 중심존재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 젊은이들은 그걸 몰라요. '현실 사회에서 자기 이익을 모르고 전체를 위하는 바보가 어디 있어?'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중심삼고 실리를 추구하다 보면 개인주의로 맨 처음에는 개인한테 배척받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면 배척받기 마련입니다. 동네에서 그런 생각하게 되면 동네에서 배척받아요. 나라에서 그러면 나라에서 배척받습니다. 세계에서 그러면 세계에서 배척받는 것입니다. 전부 다 어디든지 배척받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희생하고 가정에 보태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이 10년 동안 이렇게 가게 되면 9년까지 따라오던 사람까지도 10년 계속하는 이 사람을 중심존재로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깊고 크기 때문입니다. 그게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젊은 학생들은 특별히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강은 깊게 흐르고 넓게 흐르지만 바다가 깊고 넓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고 만물을 부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통일교회가 보는 관(觀)는 무엇이냐? 여러분 '관'이란 말 있지요? 약자로 쓰면 글(文)로써 본다(見)로, '이치에 맞게끔 보자.' 하는 뜻도 됩니다. 관에는 개인관이 있다구요. 개인의 인생관, 가정관, 종족관, 민족관, 국가관, 세계관, 우주관, 하나님관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로 말하면 천주관, 신관, 하나님관이 있습니다. 그 관이 제멋대로 되었다 하더라도 흐름에 따라서 깊은 곳에 보태 주고 가게 되면 점점점점 한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라는 결론을 내도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개인관이, 개인이 가는 관이 어디로 가야 되느냐? 이 대해를 중심삼고 가는데 꼬불꼬불 이렇게 가더라고 이 길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여행하는 길이 멀 뿐이지. 반드시 그곳으로 가려면 스승이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자기 중심삼고 뜯어먹겠다는 사람은 거기서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자기를 투입하겠다는 사람은 점점점점 많이 투입할수록 깊은 데로, 넓은 데로 가는 것은 이론적인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이 중심존재가 됩니다. 무슨 존재라구요? '중심(中心)'에서 둘을 합하면, 갖다 붙이면 '충(忠)' 자가 됩니다. 그래, 여러분 중심존재가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되고 싶습니다.」틀림없이 중심존재가 다 되고픈데 어떻게 되어야 중심존재가 되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공부를 하는데도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 공부해야 학교에서 일등 됩니다. 자기를 투입해야, 시간을 많이 투입하고 노력을 많이 투입하고 머리의 모든 세포를 많이 희생시켜 그 투입한 비례에서 학교에서 점점점점 중심존재가 되고, 자기 담당 선생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까지도 전부 다 그를 빼 가려고 그럽니다. 젊은 사람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내가 가정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보다도 가정을 뒤에 두고 사회에 투입하면 어느 것이 더 공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부모들이 '이놈의 자식아, 학교 졸업했으면 사회에 나가 사회 잘되게 하지 말고 에미 애비 먼저 잘살게 하고 나서 사회를 잘살게 해라. 너 생각이 잘못됐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어요? 먼저 사회를 잘되게 하는 것이 잘못된 거예요, 모르긴 하지만 잘된 것 같아요?「잘된 것입니다.」어떻게 되어서 잘된 거예요?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이 이론적인 공식이기 때문입니다.

보다 넓고 보다 큰 사회에 내가 보태 주게 되면 더 넓고 큰 사회는 집보다도 가정보다도 크니만큼 그 가정을 몇백 배, 몇천 배로 포괄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뒤에 두고라도 공적인 사회를 위하여 충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 보다 큰 역사를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요구도 보다 큰 인물을 원하고 가정의 요구도 보다 큰 인물을 요구하기 때문에 부모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별의별 욕을 하고 야단했지마는 10년 20년 지난 후에 부모가 와서 '내가 잘했느냐, 네가 잘했느냐?' 할 때 어떨 것 같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나타나서 '이놈의 자식, 내가 시키는 대로 잘하지 않고 이게 뭐냐?' 그러겠어요, '아이구, 부모가 반대했지만 이렇게 되어 가지고 있으니 네가 잘했다.' 하겠어요? '내가 잘했느냐, 부모가 잘했느냐?' 할 때 어떤 결론을 내요?「'내가 잘했다.'는 결론을 냅니다.」왜? 보다 많이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보다 많이 투입한 사람이 주인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있어서 앞으로 씨앗으로서 종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투입하지마는 대한민국을 넘어서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하여 투입할 수 있는 놀음을 시킬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대한민국을 끌고 세계로 가는 사람입니다. 끌고 세계로 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