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섭리적 현시점 1972년 06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302 Search Speeches

옛날의 조상"과 비교할 수 -" 우리

자! 우리의 역사적 선조를 보면 이와 같이 역사적 인연의 뜻을 계승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섭리적 역사시대에 있어서 우리 조상들의 대표자가 이러한 축복의 터전을 이어받은 것이 평탄한 자리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나선 그날부터 '내가 이 길을 알았으니 틀림없이 간다' 하는 결심과 더불어 축복의 때를 맞이하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축복의 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난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선조들도 탕감조건을 다 제시해 놓고 사탄의 모든 참소의 조건을 넘어선 후에, 참소에 걸리지 않고 그것을 무난히 돌파한 충절을 갖고 있는 데서만이 축복의 때를 맞았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세례 요한 같은 사람도 보라구요. 세례 요한은 고을과 동네를 소란스럽게 하며 태어났습니다. '저 아이가 커서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환경에서 세례 요한은 자랐습니다. 더구나 대제사장인 사가랴 가정에서 세례 요한이 태어나 얼마나 잘자랐겠느냐는 겁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았겠어요? 그렇지만 세례 요한은 집을 나왔습니다. 광야에 나가 30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저 녀석, 대학을 간다고 하더니 저렇게 됐구만!' 하든가, 또 '아무개 딸이 잘났다고 소문 나더니 겨우 저렇게 됐구만! 기껏해야 저 꼬라지로구만! 자기 아버지 어머니 주제가 그렇기 때문에 별수없어. 종자가 종자 따라가지…' 하는 별의별 비난을 듣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 녀석 그저 그러다 말지 뭐 별수 있어! 뭐 통일교회에 들어간 지 10년이 됐다는데, 고향에 돌아온 꼴을 보니 얼굴의 살은 쪽 빠지고 눈은 똥그랗게 돼 가지고…' 이게 뭐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보면 눈은 살아 있다구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 눈마저도 흐려져 가지고, 눈 정기나마 다 잃어버리고 기운 없는 신세가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 고생을 얼마나 했어요? 생각해 봐요. 통일교회 들어온 지 10년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봐요! 뭐 많지도 않구만. 아, 손을 들었으면 요러고 있나? 이게 뭐야, 이게. 내가 보이나, 이게. 시원하게 들어 봐요! 내리세요. 얼마 안 된다구. 한 5분의 1도 안 되누만.

자! 그러면 10년 이상 된 자 가운데 '나는 통일교회 들어와서 고생을 했어…'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따져 보라구요. 그래 고생을 얼마나 했어요? 옛날 왜정시대에 만주라든가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고 다니던 애국자들과 비교하게 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머리 꼭대기에 총칼이 따라다녔어요? 잡히는 날에는 죽는다 하는 경지를 거쳐 보았느냐 이거예요. 나 싫으면 말고 나 좋으면 하고, 이 놀음해 나온 것이 소위 통일교회 패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싫으면 말고 내가 좋으면 하겠다'는 무리가 되어 가지고는 뜻을 절대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못 이루게 되어 있다구요.

자! 노아 할아버지가 여러분과 같았다면 20년인들 나갔겠습니까? 20년은 그만두고라도 3년이나 갔겠어요? 못 갔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원리와 같이 '이렇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세밀히 알고 노아 할아버지가 나갔어요? 노아 할아버지는 주먹구구식이었다구요. 어느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아! 노아야. 앞으로 120년 후에 너를 주인으로 만들어 놓고 세상 사람들을 모두 다 심판해 버릴 테니 방주 지어라'고 말씀하시니, '예!' 하고 대답한 그날부터 매일같이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뭐 일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앞으로 119년 남았다'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구요. 10년이 지났으면 '110년 남았으니, 이 녀석아! 기운을 내라'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왜? 절대적인 하나님이면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텐데 매일같이 참견하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예요? 매일같이 가서 '야! 네가 어제는 그랬지만 오늘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예요, 절대적으로 안 믿는 자리예요? 절대적으로 못 믿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주체가 되고 그 주체 앞에 절대적으로 믿는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두 번도 아닌 딱 한 번 명령하면 그것으로 절대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120년 동안 매일 찾아와 가지고 노아를 격려하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못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120년 동안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노아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있어 가지고 무슨 뭐 섭리적 현시점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얘기를 해주지만, 그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알았어요? 몰랐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현재의 여러분과 옛날 역사시대에 그 터전을 넓혀 온 우리 조상들과 비교하면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