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어찌하십니까 1972년 08월 13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121 Search Speeches

주체자의 뜻을 '심삼고 사정이 통해야

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엄청난 문제를 중심삼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축복의 기준은 하늘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을 대가로 치러 가지고 찾아 나온 축복의 기준이 아니냐? 여러분이 알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입장의 축복이냐? 남자로서 대하고, 여자로서 대하는 그러한 통일교회 가정의 풍습화된 기준으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냐? 이것을 다시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여편네를 가졌으면, '어찌합니까? 뜻 앞에 어찌합니까? 어찌해야 됩니까?' 하는 문제가 걸린다구요. 당신의 본연의 심정을 대신해서 볼 때에, '우리 가정은 어찌합니까? 내 아들딸은 어찌합니까?' 이게 문제가 된다구요. 밥을 못 먹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옷을 못 입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오직 남겨야 할 뜻, 그것이 문제라구요.

영육으로 타락한 아담을 복귀하기 위해 4천년 역사를 거쳐 가지고 예수를 보내서 이것을 탕감하려고 했는데 영육복귀완성의 이념을 저버려 가지고 육적 복귀의 이념은 땅에 묻어 놓고 영적 복귀의 이념만 찾아가신 하나님의 기막힌 사정을 생각할 때 그것은 지난날의 우리가 관념적으로 아는 말의 내용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 하는 입장에 선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얼마나 기가 막힐 것이냐.

이런 관점에서‘당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나 같은 사람, 나의 가정과 같은 가정, 나의 부부와 같은 부부를 중심삼고 당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할 때에 할 방안은 심판밖에 없다는 거예요. 할 방안은 처단밖에 없다는 거예요. 할 방안은 최후의 통첩밖에 없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하며 그것을 시인하고 들어가야 됩니다. 그것을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려는 예수는 민족이 망해야 될 것을 시인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붙들고 늘어진 거예요. 망할 수 있는 그것을 시인하고, 유대교를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서 예수와 같은 담판기도는 못 했지만, 자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봤느냐? 내 자식, 내 아내를 중심삼고 해봤느냐? 우리 가정을 볼 때 어찌하시겠습니까 하는 문제를 두고, 그냥 그대로 하늘의 대를 이어 가지고 역사적인 그 국가, 국민의 전통을 남길 수 있는 가정이 못 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이것을 어찌합니까? ’하며 내 손으로 치워 버리고, 하늘로부터 저주의 불길을 내려 가지고 살라 버리고 싶은 마음을, 격한 슬픔을 느끼는 것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한두번이 아니라 연속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면 가정,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여, 금후에 당신은 어찌하십니까? 나는 어찌합니까?' 하는 것은 사정이 다르다구요. 그것은 다르다구요. 하나님이 보는 사정하고, 여러분이 보는 사정은 다릅니다.‘내 사정이 이러니 이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는 것은 천 사람, 만 사람이 다 다르다구요. 통일은 있을 수 없는 사정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 애당초부터 부정입니다. 그럴 수 없다구요. 그렇지만 주체자로서의 뜻을 중심삼고‘당신은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는 사정이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거기에 있어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그 자리는 가혹한 자리입니다. 자식을 대하여 살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있지만, 얼굴을 돌이켜야 할 장면이 아니었더냐. 자기가 사랑하는 처자면 처자, 부모면 부모를 대해 종적인 모든 내연을 가지고 순리적으로 상응할 수 있는 자리가 못 되지 않았느냐. 상충적으로 부딪쳐야 할 입장이 아니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