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집: 나와 하나님 1976년 06월 06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235 Search Speeches

보다 상대를 위하" 존재가 '심이 되어야

혼자 있어 가지고 행복할 수 있어요?「아니요」아무리 자기가 중심 자리에 있더라도 자기 혼자 있어 가지고 뭐가 행복하냐 이거예요. 내가 아무리 중심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나 혼자 있게 될 때는 그 자리를 떠나서 혼자가 아닌 자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찾아간다구요. 여러분들도 그래요? 아무리 여자가 미인이고 세상에 부러운 것 없이 다 가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중심이다' 하면서 혼자 있을 수 있어요? 그렇더라도, 가졌더라도 혼자가 되면 어디를 찾아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요? 왜그래요? 좋지 않으니까 그래요. 좋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건 가라 앉는다구요. 후퇴한다 이거예요. 좋으면 어떻게 되느냐? 드러납니다. 어느 누가 자기 외로운 것을 놓고 '만민이여! 내 외로운 것을 본받아라' 그래요?「아니요」그럼 어떠해야 되느냐? 좋은 것이어야 돼요. 좋은 것을 가지고서 선전해야 된다 이거예요.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다 하더라도 하나님도 혼자는 못 삽니다. 그게 틀림없겠지요?「예」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도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모든 만물아, 너희들은 나를 위해 있어라. 그래야 내가 행복하다' 이런 논리를 세웠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려면 '나는 너를 위해 있다. 나는 너 때문에 있다' 하는 표제를, 그러한 조건을 세워야 되고, 그다음에 '나는 네 모든 불행한 여건을 제거시킬 책임을 지겠다' 이러한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 세계는 어차피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누굴 위해 있어야 되느냐? 하나님도 이 원칙에 입각해야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있느냐 하면, 하나님도 별 수 없이 인간을 위해 있고 만물을 위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또 인간도 만물을 위해 있고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됩니다. 마찬가지 결론입니다. 마찬가지 결론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제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한 자리에 둘이 같이 있을 수 있어요?「아니요」그런 문제가 성립된다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이 가운데에 서겠느냐, 내가 서겠느냐? 여기에 한 점이 있다면, 하나님이 여기에 서겠어요. 내가 점 바깥에 서겠어요? 전부 다 이 점에 서겠다고 할 때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 중심존재는 어떤 자가 되느냐? 둘 중에 보다 상대를 위할 수 있는 것이 중심에 서야 된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위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더 위한다면 나는 그 중심을 양보해도 불평이 없지만, 내가 하나님보다 더 위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중심에 선다면 그건 싫어한다 이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