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집: 위하여 사는 세계 1975년 01월 16일, 한국 서울 조선호텔 Page #318 Search Speeches

이상적 존재의 기원은 위하- 사" 데 있다

그렇다면 지혜의 왕이시고 전체의 중심이신 하나님께서 참다운 이상이니 참다운 행복이니 참다운 평화니 하는 것의 기원을 주체와 대상, 이 양자 사이의 어디에 두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체가 계신 반면에 대상이 있는데, 주체를 위하는 길과 대상을 위하는 길, 이 두 길 가운을 하나님은 도대체 이상의 요건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그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아니면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그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되는 자기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운다면, 하나님이 그럼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떠한 대상 앞에 주체의 입장에 있으면 자기를 위하라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분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다운 인간은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이상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평화도, 참다운 행복도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창조의 근본 원칙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참다운 부모는 어떤 사람이냐 할 때에 자식을 위해서 태어났고, 자식을 위해서 살고, 자식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참된 부모의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요 참된 자식 앞에 이상적인 부모로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식 앞에 평화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참된 효도는 어디에 기준을 세울 것이냐? 그 반대의 입장인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태어났고 부모를 위해서 살고, 부모를 위해서 목숨을 다하는 사람이 참된 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부모 앞에 이상적인 자녀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녀요, 행복과 평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준에서 보게 될 때,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의 공식을 제시 한다면, 위해서 존재하는 데서만이 이와 같은 이상적인 요건, 즉 참된 사랑, 참된 행복, 참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짐작하리라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