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하늘이 함께하는 애착심을 갖자 1960년 09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0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말"을 '심삼고 이상세계를 이룩해야

그런 면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기독교를 바라보면 아직 기독교의 세계관이 안 서 있습니다. 개인은 반드시 본연의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이념을 거쳐 가지고 국민, 혹은 세계 인류로서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구원의 목적을 찾아 세워야 할 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구해 주시옵소서' 하고 피땀 흘려 기도할 때는 지나갔어요. 때가 그런 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수많은 인간들을 악한 품에 품겨 놓고 그냥 그대로 섭정해 나가면서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색다른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혹은 가정으로부터 사회, 국가 형태를 갖추어 선민이라는 민족을 여기에 내세우기 위해 역사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우주적인, 더 나아가서는 천주적인 목적 달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말씀심판시대에 요구되는 그 말씀도 역시 천주의 이념을 넘어설 수 있는 말씀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구원받아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세계관으로부터, 천주관으로부터, 철두철미한 원칙적인 그 말씀을 중심삼고 내가 부딪치게 될 때, 오늘 내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흙덩이가 빛을 받아 지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생명이 생겨나고, 감정이 생겨나고, 여기에 이념적인 방향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충정의 말씀을 인간은 반드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내용을 가진 말씀이 이 땅에 나왔느냐? 안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경 연대로 볼 때 육천 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육천 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하고픈 말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예수님이 독신으로 살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그 이념은 전체적인 우주 앞에 세워야 할 그런 것이어야 됩니다. 그러나 개인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개인구원을 지나 가정구원, 가정구원을 지나 사회구원과 국가구원까지 하늘은 반드시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소 단위로 국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나라 없는 백성인 걸 알아야 됩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나라 없는 백성이예요. 여기에는 국적도 없고 자기가 넘어올 수 있는 국가도 없어요. 자기가 자기의 종족이라 할 수 있는 민족도 없습니다. 그런 걸 다 알아야 돼요.

이런 현 세계에 있어서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느냐? 오늘날 이 시대 현상에 있어서 우리는 종교인들 앞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느냐? 도의 이념을 중심삼고 국적을 세울 수 있는, 도의 이념으로 국토를 확정할 수 있는, 도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백성으로서 설 수 있는 기준이 하늘이 섭리하신다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한 분야를 두고 볼 때, 백 집이 있으면 백 집의 살림살이가 하루를 사는 데도 전부 다릅니다. 다르더라도 어떤 원칙적인 심정에 일치된 귀일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귀일점을 세우기 위해서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내거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랑 앞에 누가 접붙여서 복귀되겠느냐? 그 사랑의 말 앞에는 누구든지 존경할 수 있는 이런 기준을 하늘은 솎아 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교회나 성경 가운데 이것을 훈계했으나 오늘날 교회를 믿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런 경지에 서 있지 못하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해 나오기 때문에 이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최후에 바라는 것은 심정적인 기반에 있어서 어떠한 개인이 잘 믿고 천당 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 가정을 넘어 국가, 혹은 세계 전부가 하나님의 심정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말씀을 중심삼은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