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집: 참부모와 중생II 1993년 10월 14일, 한국 제주국제연수원 Page #205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사정을 알고 위로하라

어머니도 그러한 면에서 훌륭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성진이의 어머니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결혼하기 훨씬 이전에 이혼했다구요. 아무런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러나 성진이가 있기 때문에 성진이의 어머니를 지금까지 잘 지켜 오고 원조해 온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러한 환경을 보게 될 때 환영할 자, 이해할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알고 선생님의 가정에 대해서 비판하는 그러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원칙에 맞는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싫어도 탕감의 길로서 그러한 과정을 밟고 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은 왜 죽었느냐 하면 여자 때문입니다. 상대자가 없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가정에서 이러한 것을 못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라구요. 가나의 혼인 잔치 때 마리아와 예수님이 만났지요? 마리아가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으니까 네가 기적을 할 줄 안다면 포도주를 좀 어떻게 할 수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은 그렇게 말했지요? '여자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적인 면에서 상관이 없다는 말이라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이웃 친척집 자식의 결혼식에는 열심이면서 자기 아들의 결혼식에는 무관심했던 마리아였습니다. 그러한 관계였다구요. 의미가 통합니까? 33살이 된 예수님의 결혼은 문제로 삼지 않고 20대인 친척의 결혼식을 중요시하다니, 이게 뭐냐 이거예요. 그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당시에 살아야 했던 모든 환경을 탕감복귀해서 그대로 모셨다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우리는 재림주를 맞이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모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확실해져요?「예.」

예수님을 생각해 보라구요.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예수님을 남겨 놓고 요셉과 마리아는 고향에 돌아가 버렸습니다. 어째서 그냥 돌아갔다고 생각해요? 싸움을 한 것입니다, 싸움을. 예수님 때문에 싸움을 한 거라구요. 마리아가 예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요셉이 싫어해 가지고 말다툼하면서 고향에 돌아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어린 아이를 떼 놓고 온 부모라고해서 부락에서 문제가 되겠기 때문에 할 수 없이 3일 후에 다시 예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너는 왜 여기에 머무르고 있느냐?'고 했을 때, 예수님이 말하기를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을 몰랐습니까?' 했다구요.

그 말은 성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대한 반박의 말이었다구요. 부모를로서 3일 동안이나 아들을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알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해서 기도를 하며 예수님을 위로해 드림으로 말미암아 영계에서도 예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만 우주의 아버지로서 오신 한 분의 아들을 모시지 못했던 여자 세계…. 불쌍한 모습이라구요. 그래서 예수님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나 오직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와 같은 입장에서, 세례 요한도, 요셉의 가정도, 어머니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 혼자가 돼 가지고…. 그러한 심정을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 2천 년 역사를 탕감해서 찾아 왔던 참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채 둘 것도 죄송한 일인데 십자가에 몰아 죽여 버렸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