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집: 아버지와 더불은 가정교회 미팅 1981년 03월 09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309 Search Speeches

굳은 절개로 전통을 이어가며 싸워 나가" 통일교인이 돼야

자, 그러한 의미에서 선생님은 지금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 혁명을 하고 있다구요. 이러한 역사 전통을 가진 그 민족 앞에 내가 혁명을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 뭐 전부 다 코리언 와이프(Korean wife;한국여자) 코리언 허즈밴드(Korean husband;한국 남자) 얻어서 코리언(Korean;한국 사람) 하고 결혼하겠다 하는데 이걸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얘기라구요.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생활 가운데 여러분들이 고통이 심하겠어요, 한국 사람들이 고통이 심하겠어요? 한국 사람이 몇 배 심하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최고 나쁜 가인을 자기 아들보다 더 사랑하라는 말이 여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한국 남자를 버리고, 한국 여자를 버리고 서양 여자를 얻어 가지고, 서양 남자를 얻어 가지고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 여자가 훌륭하다고 전부 다…. 남자나 여자나 머리 숙이게 된다구요. 미국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미국 여자들을 얻어 놓으면 하루에 열 번 싸울 것도 한국 여자들 얻으면 한 번도 싸움 안 한다구요.

그러니까 이제 미국에서는 한국을 여왕의 나라요, 왕의 나라라고 할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여왕의 나라다, 왕의 나라다' 그런 평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세계 인류 앞에 말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안 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뜻이 세계화 될 때 그 왕과 여왕이 종들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왕과 같이 만들고 왕과 같이 만들자는 거예요. 그것이 천국화 운동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여왕과 같이 만들고 왕과 같이 만드는 그게 천국이예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걸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우수한 여자들을 빼다가 여러분들하고, 이 미국놈들, 개 같은 놈들, 도둑놈 같은 것들 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놀음하고 있는데 미국이 반대를 하고 별의별 노릇 다 했지요. 뜻을 모르니까,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참는 거라구요, 참는 거예요. 그런 국민성이 있으니까 참는 것입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가 이기겠어요? 누가 이기겠나요? 여러분들도 그래요. 여러분들에게 무니(Moonie)라고 야단하고 침뱉고 별의별 짓 다해도 '10년후, 20년후에 두고 보자' 하는 거예요. 이런 걸 지금 배워 가는 거지요? 미국 내의 무니는 한국과 같은 전통을 지닌 패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여러분들도 삼백 몇 번 침범 받더라도 절개를 잊어버리지 않고 하늘을 믿고 싸워 나가는 거예요. 그게 홈 처치(home church)라고 생각하면 된다구요. 알겠어요? 삼백 육십 고개를 넘고 난 후에는…. 이렇게 생각하라구요. 이게 얼마나 멋져요.

그래서 그렇게 되면 이제 우리도 한국의 이런 수난을 중심삼고 걸어간 아벨적 전통의 나라를 찾아갈 수 있다, 우리도 통할 수 있다, 하늘과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그것이 무니(Moonie)요, 그것이 홈처치(home church)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얘기 처음 하지만, 그런 생각을 쭉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온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나라에 와서 암만 미인이 있더라도 데려다가 겁탈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 하는 거예요. 다 동생같이 생각하고 복을 주려고 한다구요. 내가 뭐 한국 사람이고 못살지만 손님을 대접하려고 한다구요. 여러분들을 먹여 살리려고 옷도 사주고, 될 수 있으면 세계 사람을 전부 다 먹여 살리려고 한다구요.

선생님 가문의 전통,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배고픈 사람은 절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님이 찾아올 때는 절대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잔칫날이라도 돌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훈이 있다구요. 그래 팔도강산의 숱한 사람들에게 밥을 먹였다구요. 그래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은, 왜정 때에 일본 사람이 전부 다 착취하고 못살게 해서 전부 다 만주로 피난을 갈 때 우리 집이 길가이니 팔도의 수많은 사람에게 밥을 많이 해먹였다구요. 어머니가 매일 삼사십명 밥을 해먹이는 거예요. 일생 동안 그러면서도 불평 한마디 안 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