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집: 나는 진실로 필요한가 1974년 11월 10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12 Search Speeches

인간의 본성이 "라" 것

그러면 우리 자체를 두고 볼 때, 내가 일생 동안 사는 데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결국은 부모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에서부터. 여러분은 어디서부터 살기 시작했느냐 하면, 나 가지고 살기 전에 부모의 복중에서부터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복중에 있을 때는 뭘했느냐? 어머니의 모든 요소를 빨아 가지고, 전부 다 흡수해 가지고 큰다구요. 복중에 있는 애기가 바라는 것이, 애기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머니가 언제나 기뻐하고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고 행복스러워하는 것일 겁니다. 그것이 그 복중에 있는 애기의 최고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교라는 것, 태교라는 것이 필요하다구요, 태교.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애기에게도 좋다구요. 그거 이해가 돼요?「예」

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 인류의 최초의 조상이 태어날 때,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배 가지고 낳는 입장이었다면 하나님은 어떠셨을 것이냐?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하나님이 성나 있었을 것인가, 꿈 가운데서 아름다운 것을 생각했을 것인가? 물론 틀림없이 미래를 생각하고, 희망에 넘치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주 새로운 차원에서 아름답게, 꿈 가운데서 희망 가운데서 그 애기들을 바라보시고 생각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애기들을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고 애 낳아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랬겠느냐 이거예요. 장래의 애기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불화를 느끼고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자라는 애기도 행복을 느낄 것이고, 희망 가운데서 자랄 것이고, 또 미래의 하나의 변치 않는 존재로 자랄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인류조상이 하나님 가운데 그렇게 품기어서 자라난다면, 인간 자신도 하나님이 부디 고이고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행을 느끼면 되겠어요? 그러니까 인간을 두고 볼 때, 인간은 하나님이 언제나 아름답고 행복스럽고 그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복중에 있는 애기가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라구요.

그것을 생각하게 되면, 절대적인 그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그들이 자라는 그 기간에는 무한한 희망 가운데, 무한한 행복 가운데, 꿈 가운데 있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리 개인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마찬가지 이치 아니냐 이거예요. 여러분 자신들에게도 어머니의 복중시대의 생활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그 다음에는 나 가지고 일생 동안의 우리의 이 육신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일생 동안에 사는 것이 복중 생활과 뭐가 다르냐 이거예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의 우주 가운데 내가 지금 품겨서 자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자 보라구요. 복중에 있을 때는, 여러분이 자궁 안에 있을 때는 물 가운데서 사는 거라구요. 우리는 지금 공기 가운데서 사는 거라구요. 차원이 높다 뿐이지요. 공기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압력도 없을 것이고 말이예요. 진공상태면 어떻게 되겠느냐? 전부 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공상태에서는 형태가 구성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여러분 전부 지금 우주의 무엇을 빨아먹고 살고 있다구요. 마찬가지라구요. 환경의 모든 영양을 받고 산다구요. 자라고 있다구요. 복중과 뭐 다를 것이 없다는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살아 나와 가지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행복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일을 하고 살고 싶어하는 것이 본성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향을 잘 받고…. 마찬가지라구요. 딱 마찬가지라구요. 환경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싶고, 흡수되는 환경에서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인생 생활의 욕망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우는 얼굴을 보고 싶으냐, 웃는 얼굴을 보고 싶으냐 할 때, '그야 웃는 얼굴을 보고 싶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 뭐 물어볼 것도 없다구요. 희망적이 좋아요, 절망적이 좋아요?「희망적」그 희망은 변하게 하고 싶지 않다구요. 희망은 변경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쁜 것은 변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은 빨리 변화시키고, 그 다음에 불쾌한 것은 빨리 변화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빨리 변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렇지 않느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