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집: 희망이 높다 1987년 08월 30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22 Search Speeches

정치 경제 교육 과학계를 지도해 가"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아야

여기, 윤박사 와서 보고하지요. 미안합니다, 어떤 교수님은 정치하고 그런다는데. 내가 다 보고 들었습니다. 다 보고하게 돼 있거든요. 나한테 보고하라고 안 해도 보고하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와서 밤 한 시까지…. 아, 이거 잘 시간이 되는데, 오늘이 주일인데…. 통일교회는 네 시 반에 일어나야 되거든요. 다섯 시에 식을 하고 여섯 시에 예배를 보는 거예요. 기성교회에서 예배 보는 시간 나 싫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잘 때 다 하는 거예요.

이런 판국인데, 1시가 넘고 2시 15분인데 앉아 가지고 이러고 있더라구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뭐냐 하면 '아이구, 통일교회가 우리같이 정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용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이번에 워싱턴에 쓱 돌고 왔는데, 그 양반은 아실거라. 윤박사는 한 얘기가 있기 때문에 미안하게 생각할 거라구. 그랬지? 까놓고 얘기하는 거야. 비밀 얘기를 해야 믿잖아, 이 사람아? 「그렇습니다」 나 솔직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가 무슨 한국 정치학 박사에게 목을 걸고 '나 살려주소. 도와주소' 하는 차원은 지났습니다. 내 자신이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 정치학 박사보다 내가 낫다구요.

요즘 미국 학계에 말이예요. 보라구요. 이번 여기 학장들 가운데서 166개소에서 강의한 분들도 계시지요? 여기 있으면 손들어 봐요. 아직 초년생이시구만. 「예」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는 패들이구만. (웃음) 미안합니다. 난 솔직한 사람이예요. 지금 보게 되면, 영국이라든가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사람들 내가 만나자고 하면 안 만나 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3차 ICUS(국제과학통일회의)대회 때, 런던 대회 때 말이예요. 이 사람들은 사람을 볼 줄 압니다. 한국 사람과는 다릅니다. 한국 교수와도 다르다구요. 벌써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거예요. 이 대회를 주도하는 사람이 나인 줄을 알고, 여기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사람은 경제에 밝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외교적 문제에 있어서 경제를 중심삼고 자기의 전후를 가리고 이를 차리고, 상하를 분별할 수 있는 언어를 써 가면서 대우를 하면서 이렇게 해 나와야지, 알지도 못하고 맹목적으로 눌러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역사적 전통을 가졌어요. 그런 자식들이 날 만나러 오는 거예요. 학술원의 저 물리학, 과학분과의 책임자가 노벨상 수상자인데 이름은 내가 잊어버렸습니다, 필요 하지 않기 때문에. '두 시간만 기다려 봐라. 이놈의 자식들!' 해 놓고는 두 시간 후에 나가서는 미안하다는 얘기도 안 합니다. '왜 왔어?' 하는 거예요. (웃음) 우리 같은 사람이 뭐가 필요하냐 그 말이라구요. 그랬더니 '이런 대학회를 시작하는 지도자의 입장에 있으니 우리 인사라도 해야 될 게 아니오' 이러는 거예요. 거 됐다는 거예요. 인사도 차리고 체면도 세우면서 이러고 나오더라구요.

이렇게 볼 때 한국교수님들, 아카데미에 있는 양반들, 여기 윤박사도 쫓겨났으니 할 수 없이 걸려들었지, 그렇지 않으면 안 걸려들었을 거라구요. (웃음) 경희대학교 부총장으로 있다가 쫓겨났으니 여기에 붙어 있지요. 이제 몇 년, 8년 됐다구? 「9년째 됩니다」 통일교회 귀신이 다 됐군. (웃음) 할 수 없으니까 붙어 있지 얼마나 고자세를 부렸어요. 솔직한 얘기예요. 제1차 과학자대회를 뉴욕에서 하는데 그때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내가 그때 저 말단에서 급사모양으로 쭈그리고 이렇게 있었습니다. 그때 윤박사 아주 거만했습니다. 내가 온 줄 알았지요. 안다면 윤세원이가 와서 악수하면서 '문선생님 찾아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인사를 안 했어요. (웃음) 그러니까 그 말은 뭐냐 하면, 쫓겨났으니 할 수 없이 붙어 있지 정상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 말이라구요. 미안합니다. (웃음)

1983년에 내가 한국에서 승공국민대회를 하겠다니까 정부에서, 민정당이 '아이구! 국민대회라면 정부가 하는 것인데, 레버런 문이 건방지게…' 그래서 싸우다가 할 수 없이 제날짜에 못 했습니다. 밀리다가 날짜가 없으니까, 11월 4일에 허가를 내고 전부 다 하니 11월 8일까지 걸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작을 12월 14일에 했습니다. 그때는 연말이고 추운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 뭘하겠다고 했느냐 하면, 팔도에 있는 체육관을 얻어 가지고 대강당에서 국민대회를 하겠다고 하니 정부가 '피이-' 했다구요. '문 아무개는 언제나 소란을 피우고 다니는 그런 녀석인데, 이번에 한번 쫄딱 망해 봐라' 한 거예요. 시일도 일년 전부터 시작하더라도 대회가 불가능한데, 체육관 한 군데를 중심삼고 해도 불가능한데, 팔도강산 서울까지 합해서 매일 거쳐가면서 체육관을 채우고 강연하겠다고 구상하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러면서 '피이-' 그랬다구요. 그런데 웬걸, 초만원이었어요.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