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집: 하나님과 우리 인간 1972년 05월 14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172 Search Speeches

선악의 기준

그러면 선과 악이 어떻게 다르냐? 이것을 지금까지 젊은 청년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 어떻게 다르냐? 이 사탄, 지옥가는 길은 어떻게 하는 놀음이냐? 자기 몸뚱이를 존중시하는 놀음입니다. 환경을 망하게 하더라도 내 몸뚱이만 좋으면 된다 하는 것이 사탄이 좋아하는 직행 길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사람은 사탄의 철로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의 철로는 어떤 사람? 사적인 사람입니다. 본래 사탄이 어떻게 했느냐? 자기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중심인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악은 무엇이냐?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게 악이요. 악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중심을 부정하고, 또 '내 말 들어라. 내 말 들어라' 하는 사람들, 자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부패한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야 할 사람들이 나라를 위하지 않고 자기 사적인 일을 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그렇지요?

대한민국을 위해서 세운 위정자들은 나라를 위하고, 더 큰 세계를 위해야 된다구요. 공적인 일을 위해야 된다구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다른 것입니다. 공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나는 희생하더라도 환경과 제삼자인 남을 잘되게 하자고 하는 패들이 공적인 사람입니다. 사적인 사람은 환경을 망하더라도 나 잘되겠다 하는 사람입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악이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알겠나, 여기 아가씨들?

환경을 무시하고, 대한민국이고 무엇이고, 체면이고 무엇이고 나 좋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 소매치기는 누구를 위해서 하나요? 강도 짓은 누구를 위해서 하나요?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대중 앞에 피해를 주게 될 때는 악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은 무엇이냐? 자기가 희생하고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선하라. 선을 베풀라고 하는 것은 남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세밀히 얘기하려면 끝이 없기 때문에 요것만 얘기하겠습니다. 거기에서 갈라집니다.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세계의 종말은 어떻게 되느냐?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의 나라를 쳐 가지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시대의 발전사가 인류역사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어떤 것이냐 하면 자기 전체를 희생해 가면서 전체를 위해 봉사해 나온 것입니다.

지옥과 직통하는 철로길이 어디라구요? 사적인 길, 천국과 직통하는 철로길은 어디라구요? 공적인 길.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 종교의 길,하나님을 숭상하는 길, 선을 추구하는 길이라는 것은 남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길입니다. 제삼자를 출세시키고 자신은 희생하는 길입니다. 악의 길은 무엇이냐 하면 제삼자를 희생시키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가는 방향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길이라는 것은 선의 길입니다. 남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선한 사람, 좋은 사람 하는데 희생을 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는 좋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찾아 보라구요. 좋은 친구라 할 때는 '야. 이 자식아 너, 도시락 가지고 왔어? 이리 내놔. 나 먹자구' 이렇게 세 번만 하게 되면 나쁜 친구라고 하며 대번에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 도시락 안가지고 왔지? 나하고 나눠 먹자'고 하면 벌써 좋아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좋다는 사람,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욕심을 추구하는, 사적인 감정을 들고 나오는 사람 가운데 좋다는 사람 있나 찾아 보라구요. 남을 위해서, 제삼자를 위해서 희생하는 데에서 좋은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할 때는 반드시 희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희생하는 친구, 희생하는 스승, 희생하는 부모, 이렇게 될 때에는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스승이 되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열 친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녀석이 '야, 너희들 아홉 친구는 나를 위해서 움직여야 돼, 이놈아' 하면서 매일같이 시켜 먹어 보라구요. 다 도망간다구요. 그렇지만 '야,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냐? 내가 친구로서 할 일이 뭐냐? 친구들을 위해서 좋게 해 주는 것이 친구 아니냐? 하면서 오늘도 희생, 내일도 희생, 일년도 희생, 십년도 희생, 일생 동안을 그렇게 나가는 친구가 있다면, 다른 친구가 그 친구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서 버리고 가는 사람 있어요? 그렇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자고 하는 친구가 있으면 시일이 가면 갈수록 모든 친구들은 전부 다 도망가고 나중에는 외톨이가 되어 자기 혼자 절망 가운데 떨어지는 것입니다. 열 친구가 있는데 열 친구를 위해서 붕사하고, 열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아홉 사람 전부가 그를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자기를 중심삼고 친구들 가운데 나서게 될 때는 아홉 친구는 전부 다 그를 나쁜 친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이 선악의 구별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오늘날 이것이 혼란이 돼 버렸다구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종교는 하늘을 찾아가는 길이요, 선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을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하늘땅을 위해서, 그 다음 에는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인간이란 종자는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체 앞에 완전한 자격자로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