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우리는 주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 1957년 06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0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필"로 하" 참사람

하늘뜻을 위해 가는 길은 혼자서 하늘의 영광이나 생명의 가치를 누리려고 해서는 갈 수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하고 남을 비판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입히는 그런 행동이 타락을 성립시킨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끝날의 영광을 바라보는 이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위치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말할 수 없이 애달픈 심정을 갖고 탄식과 수심에 싸여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그러한 하나님과는 달리 편안한 자리에서 자신만 즐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오늘날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모세를 잃어버린 이스라엘민족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던 군중과 같이 비참한 입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뜻을 이루기 위해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행동을 하면 산양과 면양으로 갈라지는 끝날의 분기점(分岐點)에서 산양편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과 심정일체를 이룬 사람일 것입니다. 만약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슬퍼하실 때 같이 슬퍼하고 예수님이 기뻐하실 때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성도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더욱 기뻐하셔서 천륜의 모든 뜻을 그들 앞에 나타내셨을 것이며, 영원한 승리가 그들에게 안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무리가 많아져도 믿고 당신의 모든 것을 인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말할 수 없이 처량하고 슬픈 심정이었는데,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끝날에도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근심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6, 7천의 무리보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악과 대항하여 싸우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으로 호소하실 때, 인간들은 예수님보다 3배 이상 애달픈 심정을 가지고 호소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요한·야고보는 3분의 1도 느끼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를 수고하면 여러분은 그의 3배 이상을 수고해야 하고, 하늘을 대표한 사람이 하나를 수고하면 여러분은 그보다 3배 이상의 수고를 해야 하며, 하늘을 대신하는 사람이 하나를 염려하고 하나만큼 수난을 당하면, 그보다 3배 이상의 염려를 해야 하고 3배 이상의 수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의 3분의 1도 수고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 민족을 망하게 했고, 독생자 예수님을 팔아먹었고,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여러분은 진정으로 통일교회를 따라가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 문(文)이라는 사람이 어떤 고충을 느끼고 있을 때 여러분도 3배 이상의 고층을 느끼면서 하늘 뜻을 세우기 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 사람이 되기는 커녕 자기만이 편안한 자리에 있고자 하는 이런 무리가 웅성댈 때는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민족이 광야에서 주검의 무더기를 남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 사탄이 침범할 것입니다.

역사의 종국을 맞게 되는 이 때에 여러분들은 6천년의 원한을 품게 한 사탄을 향하여 `내 어찌 너의 권한을 자랑하게 할소냐!' 하고 외치며 혈혈단신 사탄과 싸워 승리한 실적을 하나님께 보여 드림으로써 온 우주 앞에 소망이 샘솟게 할 수 있는 영광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적당히 넘겨도 되겠지'하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