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집: 신의 섭리노정과 인간의 생활노정 1987년 01월 11일, 미국 Page #111 Search Speeches

타락으로 인한 모순된 인간은 해방의 노정을 가야 해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뭐냐? 내 생각을 중심삼아야 되겠느냐, 내 본심의 생각을 중심삼아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본심의 생각이 있고 본심에 반항하는 타락성의 생각, 이 두 생각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어째서 인간에게 두 마음이 있게 되었느냐? 이건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 마음이 두 마음인 것을 볼 때 근본이 두 마음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타락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종교라는 것이 나와 가지고 위대한 공헌을 한 것이 뭐냐? 특히 기독교를 중심한 성경이 나와 가지고 위대한 공헌을 한 것이 뭐냐 하면, 이와 같은 두 생각 가운데서 고민하는 인간 앞에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또 다른 이런 마음이 생겼다'고 한 거예요. 이것은 놀라운 발견인 것입니다.

그 개념이 어디로부터 왔느냐? 종교로부터 왔습니다. 종교는 어디서부터? 신으로부터 왔다 이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사람들이 그걸 모르니, 타락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사실, 타락이라는 것이 인류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무섭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어려운 섭리노정의 길을 거쳐왔는가 하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했어요. 그때부터 타락의 습관이라는 것이 우리 육신의 혈통을 통해서 고질화되어 50억 인류로 번식될 때까지 따라 나왔다 이거예요. 그것이 높다면 히말라야 산보다 높고, 황폐하다면 사하라 사막보다 더하고, 대양이라면 태평양보다도 넓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요. 사막으로 말하면 사하라 사막보다 더 넓다는 거예요. 그런 습관적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생각도 안 해요. 그 짐을 벗을 수 있고 그 길을 돌파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을 주고라도…. 돈이 있으면 천하의 돈을 다 주고라도, 또 값진 무슨 보물이 있다면 보물을 다 주고라도 벗어야 할 짐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통일교회 식구된 여러분, 이런 생각 해봤어요? 그런 짐을 내가 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예요. 이런 짐에 눌려 있고, 포위된 내 가운데 본성이라는 본심이 있어 가지고 점령당하지 않고 어느때든지 그 밑에서 솟구쳐 머리를 들고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두 사람이 있는 걸 바라볼 때 여러분 자신은 어느 사람편이 될 것이냐? 「본심」 대답은 쉬워요. 본심이라고 대답하기는 쉽습니다. 이 본심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겠어요? 본심의 사람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상처를 입었겠나.

그 본심이 사람이라면, 본심의 눈이 어떻겠고, 귀가 있으면 어떻겠고, 입이 있으면 어떻겠고, 또 마음이 있으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사도바울 같은 양반도 그러지 않았어요? '내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몸은 이 세상의 죄악의 법을 따른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 누가 이 싸움터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리요' 하고 탄식했다구요. 누가 나를 해방해 주느냐 이거예요. 그 본심의 사람은 해방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해방해 주겠느냐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을 사랑하지요? 나를 사랑하지요? 자기를 사랑하지요? 자기를 사랑한다는 그것은 두 사람 가운데 어느 것을 중심삼고서냐,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 고착(固着)되어 있는 이것을 저나라에 가더라도 떼어버려야 됩니다. 언젠가는 떼어 버려야 돼요. 청산지어야 됩니다, 언제라도. 이것이 이 땅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땅에서 청산해야 됩니다. 저나라에서는 청산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뚱이가 따라 움직이겠어요? 못 움직이는 거예요. 그렇게 큰 죄악의 내가….

영계에서는 하나님을 알고, 천국을 알고, 직접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긴 가야 할 텐데 못 가는 신세라구요. 그 초라함과 비참함이 얼마나 크겠어요? 세상의 어떠한 비참함보다도, 역사시대의 어떤 누구의 비참함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비참한 자아를 발견하는 그때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느냐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지옥이니 천국이니 이런 것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이 한 일상생활 전부가 지옥으로 가는지 하늘로 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알 것입니다.

종교는 고행길을 가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좋아하는 것은 발로 차 버려라 이거예요. 육적(肉的) 눈이 좋아하는 대로 가다 보면 마음적 눈은 싫어하는 거예요. 전부 반대예요. 가만히 생각하면 말이예요, 인간이 모순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타락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순된 자아발견, 이게 위대한 발견이라는 거예요. 이게 역사에 있어서 어떠한 발견보다도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돼요. 타락이 어떻게 됐는지 안다고 하면, 그것이 보다 놀라운 것입니다. 이 혼돈 가운데서 어떻게 해방된다는 길이 있다면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가야 할 책임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