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집: 참된 심정을 본향에 심자 1988년 05월 15일, 한국 본부교회 Page #43 Search Speeches

남북통일운동국민-합을 결성하기까지

그러니 남북통일운동을 제시하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이겁니다. 보라구요. 그때 4.13선언, 6.29선언, 그 와중에서 대학가에서는 대가리 하나도 내밀지 않고 있는데, 교학통련을 만들었습니다. 교학통련이 뭐예요? `전국대학교수학생남북통일운동연합' 16자예요. 얼마나 길어요? 그것이 복잡하니까 교학통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민정당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고대출신이더구만. 고대고대했던 모양이지요? (웃음) 잘못 고대하다간 죽어요. 벼락맞는다구요. 그런 곳에서 내가 교학통련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무엇에 내가 미쳐서 그랬겠어요? 나라꼴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나라에 문제가 있을 때는 내가 왔습니다, 대한민국에 문제가 생길 때는. 그래서 안기부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또 왔구만. 저 양반 언제나 문제 있을 때 나타나 가지고는…. 편안하면 좋겠는데 또 와서 휘저어 놓겠구만' 그런 말 하는 걸 내가 알면서도 오는 겁니다. 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거든요.

4.13에서 6.29 중간인데 얼마나 복잡했어요? 대학가에서 싸우고, 박보희 고대에서 쫓겨났었지? 그때 30개 대학에서 나발을 불어라 이거예요. 그래 스크럼을 짜 가지고 어깨띠를 두르고 공산당 앞잡이들하고 싸워라 이겁니다. 종교지도자가 그거 할 책임이 있겠어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기도나 하고 성경이나 보면 되지, 내가 왜 배가 아파서 그 놀음을 했겠어요? 다 책임을 못 하니 나라도 해야지요. 그래 30개 대학에서 반대하던 걸 깨끗이 해치우고, 그다음에 대학총장과 이름 있는 사람들 중심삼고 8도 강산 대회를 거치고 그걸 끌고 와서 5월 15일, 작년 오늘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을 발족했던 것입니다. 그게 하루에 된 줄 알아요? 벌써 그 자리에 나설 때는 생명을 각오한 겁니다. 자기 출세라는 건 생각도 없어요.

이미 3년 전부터 준비했잖아요? 안기부에서는 문총재 또 와 가지고 설친다고 얼마나 했어요? 서울 통·반조직 편성하는 데 그때 며칠인가? 3주일에 하려던 것이 38일 걸렸나요? 이래 가지고 보고 되기 전에 전부 다 교육해 가지고 배치한 것입니다. 그 책임들을 다 못 해 가지고 재차 하느라고 내가 죽을 뻔했지만 말이예요. 그때 지시한 게 뭐냐? 남북통일운동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반격파운동, 거 통·반격파라는 말 들었어요? 들은 사람 손들어 봐요, 통·반격파. 여기 여자들은 다 뭔고? 안 들은 사람들, 이거 가짜들이 왔구만. 내리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