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집: 복귀의 가정과 세계 1968년 09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8 Search Speeches

아담 해와와 예수님의 차이점

인류의 시조가 타락한 연고로, 오늘날 전세계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와 지금까지 왔다간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타락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난 후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살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던 인류 시조 이상 선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문일답했으며 하나님이 자기들의 요구에 응해 주실 수 있는 환경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있던 그들이,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심정의 인연으로 연결된 그들이 천법을 어김으로 인해 그러한 자리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늘로 돌아가려면 그들 이상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들 이상의 기준을 이 땅 위에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준을 터로 하여 타락한 인류의 시조보다도 더 높은 기준에서 하늘과 연결되고, 더 높은 기준에서 사정적으로 연결되고, 그 목적에 있어서나 모든 책임을 하는데 있어서 인류 시조보다 더 철두철미한 하나의 책임자가 나와야 합니다.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모든 욕망을 위해서 하늘을 배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생명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중심 존재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를 세우기 위해서 하늘은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대표자로 보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아담 해와와 다릅니다.

아담 해와는 눈이 밝아 더 높아지려는 욕망의 발로에서 타락했지만, 예수님은 죽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3차 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이렇게 기도한 것은 인간의 뜻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을 위로한 예수님의 출발이요, 이것이 곧 예수님의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타락한 인류 시조 이상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위하는 데에 있어서 아담보다 나아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탄을 누구보다 미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과정에서 닦아 놓은 승리의 터전을 고스란히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과정에 있었던 사탄의 참소조건을 없애야 했던 것입니다. 또 시대적으로는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이 실수해서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으면 그것을 없앨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했습니다.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본연의 기준을 전폭적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치되고 하나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위주한 절대적인 기준에 서야 했습니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예수님은 아담 해와보다 나아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구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4천년 만에 비로소 그런 입장에 세워진 아들, 한 나라 가운데 유대교를 중심하고 요셉 가정에 하나의 씨로서 이 땅 위에 세워진 아들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때에 사탄편은 국가를 이루어 하늘편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편에서도 완전한 발판의 국가적인 기준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의 나라를 편성하기 위해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수고하신 하나님의 공적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적인 발판이 되어 이 지구성이 완전히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삼은 세계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만 그 세계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