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집: 하나님과 나 1967년 04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9 Search Speeches

아버지를 모시고 행동하면 틀림-다

여러분이 식구들을 척 대하게 된다면, 모든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권고할 때는 자기가 권고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도 그래요, 나도.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오지만, 잘못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잘못했을 때 척 보고 '백 번 용서해 주마' 하고 마음을 그렇게 먹고 대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대하는 사람들을 백 번 용서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지금 자기의 아들이 말이지요, 살인강도 놀음을 해 가지고 사형수가 되었다 이거예요. 그래서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찰라에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야, 너는 잘 죽는다. 자, 어서 죽어야지, 이 자식아' 그래요? 결과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심정은 천번 만번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용서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 아량을 가지고 대하는 거예요. 천 번 용서해 주마….

그렇지만 문제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나도 그럴 수 있는 과거가 있었다, 내가 그런 입장에 섰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거 곤란할 거 아니예요. 내가 현재 그런 실수를 범했다면 하늘은 날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책임진 분야에서 이렇게 잘못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까지 충성한 기준도 있다고 보지만, 그 기준을 볼 때 요만한 것 잘못했다고 전부 다 '이녀석' 하고 때려부수려고 하겠느냐 이거예요. 하늘이 그런 입장에 서면 천 번 고려할 것이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심각한 자리에서…. 그래 가지고 권고를 받으면 매를 맞고 이래도….

지금 통일교회 나왔던 사람들 가운데 떨어져 나간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한 30분 얘기를 나눴습니다. 비밀스러운 얘기를…. 자기 자리를 잡고 안 올려고 할 때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반대의 입장에서 별의별 해괴한 벌, 야 벼락을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모르니까 그랬지. 그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편에서. 이렇게 시정해 주면 책임자도 그런 관점에서 나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심정을 연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 놓고 아무리 강력한 얘기를 하더라도 내가 그러한 관심을 표시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양심의 가책이 되지 않아요. 양심의 가책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지나치게 결단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먼저 대한 그 심정이 그 이상 큰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이 나에게 준 조건을 걸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 방법이 있는 거라구요.

내 자신도 그래요. 내가 지금 일본이라든가 미국에 갈 때, 혹은 지방에 순회할 때는 내가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옛날 초창기 시대에 뜻을 대했던 그 심정을 어떻게 느끼느냐 이거예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초창기 시대의 심정을 어떻게 느끼느냐? 아버지를 모시고 큰 싸움터에 나간다고 생각할 때, 지금 그들이 나를 환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하는 무리라고 생각할 때는 어떤 심정을 갖고 가야 되겠느냐?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 하겠어요? 그럴 것 아니예요?

지구를 순회하게 되면 지구에서 지구장으로부터 식구들이 전부 다 선생님이 온다고 인사하고 뭐 이러더라도 우쭐하지 않아요. 첫 번같이 대하는 거예요. 원수들과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을 대하던 그 심정을 갖고 나가니까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겁니다. 그러나 척 나설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거예요. 내가 유럽 같은 곳에 가더라도, 내가 독일에 가 가지고 통역을 두 사람 놓고 얘기했습니다. 통역을 두 사람 놓고 얘기하는 거예요. 한마디하고 간다면 잊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걸 걱정하지 않는 거예요. 잊어버리기는 왜 잊어버리겠어요? 하늘이 지금 이때에 있어서 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그것이 강력히 서 있으면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다음 말은 무슨 말을 해야 되겠다고 딱 잡아 놓았기 때문에 잊어버릴 수 없다는 거예요. 걱정이 없다 이거예요.

언제든지 우리가 나설 때는 아버지를 앞에 세워 놓고 아버지의 답에 의한 행동의 결과를 취해 나가면 틀림없다 이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그건.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것을 배워야 됩니다. 반드시 하루하루를 보고하고, 시간시간의 생활에서 보고하는 겁니다. 그게 시의생활 (侍義生活), 모심의 생활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시의라는 것은 무엇이예요? 모심이라는 것이 무엇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