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집: 심정만이 하늘과 동반할 수 있다 1962년 03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7 Search Speeches

심정과 탕감복귀

지금 때는 이념주의시대요, 세계주의시대입니다. 자녀를 중심삼은 가정이 종족, 민족을 위하는 때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이며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 세계와 오늘의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고통과 불행은 커지는데,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불행이 탕감됩니다. 그냥은 안 됩니다.

과거와 현실을 두고 볼 때 앞으로도 불행의 요소와 대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긋지긋한 불행과 고통을 느끼는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불행이 크면 클수록, 즉 그 불행이 세계적이거나 천주적일수록 복된 시기가 빨리 돌아옵니다. 현실의 복잡한 것들이 모두 지나가야 이상세계가 이루어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굶주리고 있고, 또는 억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바라시던 세계는 이러한 세계인데, 오늘날의 세계는 이렇습니다' 하는 탄식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물의 극치점을 넘어가야 합니다. 심정의 골수는 직선을 그으면서 외적으로 환경을 넓혀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기대 위에 가정, 종족, 민족, 세계적으로 환경을 넓혀 나오면서 하나님의 심정은 그 사명을 맡은 사람들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심정의 내용을 알아야 됩니다. 첫째는 타락의 심정, 둘째는 복귀의 심정, 세째는 부활의 심정, 이 3단계의 심정을 알아야만 합니다.

멋진 하나님의 이상은 깨어졌습니다. 따라서 가치적으로 보면, 역사상의 모든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이와 같은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은 세계사적인 왕자가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복중의 아이는 어머니가 겪는 모든 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오늘 세계에 널려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은 사람입니다. 제아무리 내가 누구니 누구니 해 보았자 다 죽은 자들입니다. 타락의 심정을 모르고 복귀노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심정이 현실과 미래의 생활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잘났든 못났든 이러한 심정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늘의 한이 있다면 그것은 심정적인 존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 민족, 세계 그리고 하늘땅을 대신한 심정의 소유자가 필요합니다. '너는 누구냐' 하면 '나는 역사적인 아담이요, 해와요, 노아요, 아브라함이요, 또 누구 누구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타락의 심정과 복귀의 심정과 부활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나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무엇으로 심판하시겠습니까? 심정을 가지고 하십니다. '나는 이런데 너는 나와 같은 아들딸이 되었느냐?' 하며 심정문제를 가지고 나올 때에도, 어느 누가 '아버지 앞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느냐'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한을 풀 수 있는 실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한을 풀 수 있는 실체다' 라고 할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는 개인이로되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의 실체입니다.

만물을 주관하라는 것은 아무나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인 존재를 두고 한 말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 전의 심정과 창조 후의 소망의 심정을 가진 자의 주관을 받으려 합니다. '삼라만상 모두는 내 심정권내에 들어와 있다, 뿐만 아니라 내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 피조세계와 심정을 통하여 인연을 맺어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야곱의 노정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모세의 노정도 문제없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인간세계가 빈대하고 하나님이 버린다 해도 나는 변할 수 없습니다. 변치 않을 것을 하나님의 심정과 맹세합니다. 나는 변치 않습니다' 해야 심정적인 탕감이 됩니다.

예수가 당한 십자가의 고통을 실체적으로 당할 수 없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비원리적인 고통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생각하지도 않고 소망하지도 않는 것을 누가 갖다 주겠습니까?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눈물을 흘려 역사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한다고 했는데 무엇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겠습니까? 심정입니다. 길을 걸어도 아담, 노아, 모세, 예수,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