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본을 삼자 1970년 08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9 Search Speeches

나쁜 것을 흡수하- 생명의 "소로 "꾸자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서 3분의 2 이상이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생활이라면 그 3분의 2의 생활을 모두 떼어버릴수 있느냐? 안 됩니다. 떼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선조로부터 죄악에 대한 보응의 결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낮은 것은 버리고 높은 것만 취할 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응당히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 가지고 높은 것에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쁜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절망에 떨어진 슬픔을 끌어 올려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기쁨의 여력, 소망의 여력을 지닐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의 생의 노정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나는 사랑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생활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생명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인격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내 가정의 본을 세워야 되겠다. 혹은, 사회와 국가에서 본을 세워야 되겠다'고 할 때, 거기에는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3분의 2 이상이 나쁜 것입니다. 좋은 것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문의 사회면을 보더라도 좋은 기사 보다는 나쁜 기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거의가 나쁜 기사만 집어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소화하고 선한 세계를 이루겠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것에 밀려 다니고, 이러한 것에 쫓겨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삼켜서 소화해 가지고 영양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태연자약한 하나님의 내적인 선을 심어 가지고 악의 요소들을 거름으로 하든가, 영양소로 하든가 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나쁜 것이지만, 생명이 자라는 데 비료로서 흡수하게 될때는 그 더러운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더러운 거름을 뿌린 곳에 씨앗을 심어도 씨앗에게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씨앗이 더러운 잿더미면 잿더미, 거름더미면 거름더미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그것을 흡수하여 생명력을 지니게 될 때는, 그 거름이 생명체를 성장하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에게도 시련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련과 고통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만 갖춘다면 만고에 빛나는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악한 세상을 향해서 가는 노정에 있습니다. 그길 가운데에는 통일교회의 행복이 있고, 통일교회의 선한 기준이 있지만 그 행복과 선한 기준은 먼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탕감의 길을 가야 하고 책임과 사명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먼저 좋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슬픈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좋은 것만으로 나타난다면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슬픈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은 교단적인 슬픔이지만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슬픔이요,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슬픔입니다. 그 슬픔이 크고 높고 넓을수록 통일교회를 세계화시키기 위한 탕감인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을 갖고 고개를 넘는 날에는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